一筆揮之 공모(감상)

대상작품: 휘지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난네코, 2일전, 조회 18

一筆揮之

일필휘지

 

 

 

 

 

 

 

 

목차

1. 일필휘지 : 서예의 미학, 특징, 예술성

2. 작가님께 드리는 말 : 아쉬운 점, 좋은 점 가리지 않고 팍팍 적어주시면 작가의 자양분이 됩니다!

 

 

 

 

 

 

 

 

 

1. 일필휘지 : 서예의 미학, 특징, 예술성

 

“作書所最忌者位置等勻, 且如一字中, 須有收有放, 有精神相挽處. 王大令之書, 從無左右並頭者. 右軍如鳳翥鸞翔, 似奇反正.”

“서예를 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균등한 위치이다. 한 글자 안에도 잡아당김과 풀어짐이 있어야 하고, 정신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왕헌지의 서예는 좌우를 나란히 하는 법이 없다. 왕희지의 글씨는 봉황과 난새가 날아오르듯 자유분방하지만 신기하게도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明, 董其昌, 『畵禪室隨筆 · 論用筆』

 

“太古無法, 太樸不散. 太樸一散, 而法立矣. 法於何立? 立於一畵. 一畵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見用於神, 藏用於人, 而世人不知. 所以一畵之法, 乃自我立. 立一畵之法者, 蓋以無法生有法, 以有法貫衆法也. 夫畵者, 從於心者也. 山川人物之秀錯, 鳥獸草木之性情, 池榭樓臺之矩度, 未能深入其理, 曲盡其態, 終未得一畵之洪規也. 行遠登高, 悉起膚寸. 此一畵收盡鴻蒙之外, 卽億萬萬筆墨, 未有不始於此而終於此, 惟聽人之握取之耳. 人能以一畵具體而微, 意明筆透. 腕不虛則畵非是, 畵非是則腕不靈…… 蓋自太樸散, 而一畵之法立意, 一畵之法立, 而萬物著矣. 我故曰, 吾道一以貫之.”

“사람이 능히 일획의 이치를 갖출 수 있다면, 기교가 미약하다 할지라도 뜻이 명백해지고 용필은 거침없이 뜻대로 될 것이다. 팔이 허령하지 않으면, 획은 획다운 획이 아니요, 획이 옳게 그어지지 않으면, 곧 팔은 영활하지 못하게 된다.…… 대개 太樸이 흩어지니 일획의 법이 세워졌다. 일획의 법이 세워지니 만물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까닭에 나의 道는 一以貫之이다.”

淸, 石濤, 『畵語錄 · 一畵章』

 

서예는 글자를 쓰는 것이지만, 중요한 의의는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며, 문자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호로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서예의 의의는 쓰는 것인 ‘寫’에 있고, 서예는 ‘寫’를 통하여 인간의 정감을 여백 위에 쏟아내며, 그 흐름의 결과물이 바로 點 · 畵이며, 그 點 · 畵은 가벼움과 무거움, 빠름과 느림, 꺾임과 완만함, 끊김과 이어짐으로 흥취의 흐름을 筆勢로서 표현하며, 서예가는 기법이 정밀하게 숙련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쓰여 앞뒤가 관통하는 기세를 ‘一氣貫之’라고 합니다.

 

[그림 1] 대숙륜 시 · 신사임당 草書 六幅 (1폭) 

 

 

위의 그림 속의 서예는 심사임당이 쓴 것으로 시는 아래에 인용된 당나라 대숙륜의 시「贈李唐山人」에서 첫 구절만 바뀌었는데, 대숙륜은 “此意無所欲, 閉門風景遲. 柳條將白發, 相對共垂絲.” 라고 하여 신사임당이 적은 시와 첫 구절에서 5언중 3언만이 다릅니다(靜無事  無所欲). 심사임당은 시, 서예, 그림에 상당한 재능을 가진 여성문인입니다. 유가(儒家)적 가치관인 전통적 현모양처와 효심을 바탕으로 순종적 미덕을 가진 여성상을 숭상하는 조선시대에서 여성이 문인으로서 재예를 뽐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此意靜無事      내 생각이 고요하니 마음에 일이 없고

閉門風景遲      문 닫고 집에 있으니 풍경이 더디구나

柳條將白髮      버드나무 가지는 장차 백발처럼 흰 꽃가루 날리면서

相對共垂絲      서로 마주서서 함께 실가지를 늘어 뜨렸네

 

戴叔倫, 「贈李唐山人」

 

 

서예가 실용에서 예술로 도약한 시기는 대략 동한시대(東漢時代)로 점철됩니다. 동한시대는 기존의 진(秦)나라 문자통일에 의해정형화된 전서(篆書)인 소전(小篆)에서 벗어나 예서(隸書)와 초서(草書)로 서체변화와 발전을 이루었고, 서예가와 서론(書論)의 등장으로 글씨의 미학을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예는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人正則筆正]’ 혹은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書如其人]’라는 측면에서 예술성보다는 인간의 됨됨이나 명성에 의해 글씨의 품격이 결정되었습니다.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이즘과 양식에 비해 서예는 여전히 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는 수천 년간 문자를 매개로감성적 표현을 단순한 필획에 기탁해 온 서예의 본질적 특성상 현대미술의 개념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는 이미 칸딘스키, 클레, 미로 등 서양화가들의 추상세계와 앵포르멜 미술, 잭슨 폴록과 같은 액션페인팅 등에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서양미술이 갖지 못한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서예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장르입니다.

 

[그림 2] 한스 나무트 사진, <‘가을의 리듬’을 그리는 잭슨 폴록, No.30>, 1950년

 

 

 

[그림 3] 리홍재, <율산 리홍재 60년 명품전>, 퍼포먼스 디스플레이, 2019년 

 

서예는 점획을 통해 문자의 생동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예술로서의 당위성을 갖는데, 생동하는 글씨는 인간의 육체처럼 글씨에서 반드시 신(神), 기(氣), 골(骨), 육(肉), 혈(血)이 모두 갖추어질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이른바 필법과 필세와 필의라는 서법의 3요소로, 필법은 운필의 조형성을 풍부하게 하여 변화를 창출하고, 필세는 운필의 속도감을 조절하여 생기를 불어넣으며, 필의는 운필에 감수성을 개입시켜 개성을 진작시키며, 이러한 서법은 시공을 초월한 서예 본질의 이해이자 전통의 계승이고, 이것을 토대로 변화와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의 서예가 전통적 산물에서 현대적 예술로 발돋움하는 전환점이 되었는데, 서예가 예술다움을 회복해야만 했으며, 서예가 예술일 수 있는 이유는, 고금을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인 문자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있으며, 그 아름다움의 창출은 생명력 있는 필획의 순수성에 달려있고, 시대를 막론하고 서예의 본질이 자연에 기인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는 한 서예는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쉼 없이 생동하고 변화해야 하며, 살아있는 필획, 자신의 사고와 감성이 녹아든 자기만의 글씨를 어떠한 형태와 미감으로 표출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2. 작가님께 드리는 말 : 아쉬운 점, 좋은 점 가리지 않고 팍팍 적어주시면 작가의 자양분이 됩니다!

 

저는 일전에 적사각 작가님께 작가님의 감상을 편히 적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작가님의 솔직한 감상이 궁금해요!’라는 댓글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휘지>의 리뷰글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리뷰어 난네코가 아쉬웠던 점과 좋았던 점을 가리지 않고 기술하는 것이 적사각 작가님께서 창작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적사각 작가님의 239매 분량의 중단편 소설 <휘지>를 반복해서 읽으며 의미있는 문장들을 책갈피에 집어넣고, 개인적으로 적사각 작가님께 자양분이 될만한 소재들을 포착하였습니다.

 

(p. 1) 휘지는 백지 위로 붓을 살포시 내리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한 획 그리고 또 한 획. 신중하고 거침없다. 몇 개의 선이 맞물리고 엇갈리니 글자가 탄생한다. 먹이 마를 틈도 없이 공백이 글자를 덮었다.

(p. 4) 옅은 어둠 속 잔광이 흩어지고 네모난 빛이 돋아났다. 얼마 전부터 휘지의 머릿속을 헤집는 노이즈였다. 휘지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찢어버리든 태워버리든 저것을 없애야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휘지는 닿을 듯 닿을 듯 닿을 수 없었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그것에 닿을 순간, 삐ㅡ완료음이 휘지를 현실로 끄집어 냈다.

적사각, <휘지> 中

 

붓글씨 장인 안드로이드 휘지는 하얀 종이 위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서예 로봇입니다. 공자는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면서 “가는 것이 이와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다.”라고 했고, 노자는 “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했으며, 주역 · 계사상(周易 · 繫辭上)에서는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를 낳는다.” 주역 · 계사하(周易 · 繫辭下)에서는 “강과 유가 서로 미루니 변화가 그 가운데 있다.”라고 하며, 장자는 “천하는 一氣로 통할 뿐이다.”라고 합니다.

생명이 연계된 氣勢는 서예작품의 상하좌우의 유동관계 및 전체의 혼연한 생명의 구성에서 다시 체현됩니다. 동양문자예술의 정수인 서예를 하는 로봇이라면, 붓글씨 장인 안드로이드를 제작할 때 개발자들이 상당히 고려했을 것입니다. 2016년 3월 9일~15일에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 9단 이세돌(李世乭, 1983년~현재)이 구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상대로 대국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이세돌 1승, 알파고 4승으로 인간이 패배하고 인공지능이 승리하였습니다. 2016년을 지나서 2025년인 동시대의 인공지능은 굉장히 고도화되어있습니다. 작중의 붓글씨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휘지’가 등장한 시점은, 동시대보다 훨씬 더 인공지능이 고도화된 근미래일 것입니다. 그러나, 작중에선 붓글씨 장인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휘지’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어떤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아마도, ‘휘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베이스나 기계의 연산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p. 35) “준비 시간 부족해서 당일 변경은 안 된다고. 메일 보낼 때마다 확인하고 리허설 때도 몇 번이나 알려줬잖아. 어제는 변경 없다고 아주 좋다고 실실거렸으면서 이제 와서 안되겠냐고. 휘지, 한글은 다운로드 안 했지?”

(p. 36) 휘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옥은 데이터베이스가 오염될 소지를 우려해 투어 플랜에 따라 휘지가 쓸 수 있는 문자를 한정한다. 이번 투어는 한자 번체만 쓰기로 했다.

(p. 37) “하여간 인간들. 장인이라면 다르지 않을까요? 굽신굽신. 다르긴 뭘 달라. 더 까다롭지. 내가 전통문화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 입만 아프지. 아, 휘지. 어깨 축 살짝 틀어져있더라. 몰랐어?”

(p. 52) 말로만 네, 네 하지 말고. 다른 거 안 바라. 너는 순수도만 지켜. 투어 중에 무너지면 나도 어떻게 못해주니까. 응?”

(p. 98) “진짜 옛날 버릇 나오게 할래? 내가 사람답게 대해주니까 찍고 까불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내가 누누이 말했지. 눈 떠보니 인간이 통달할 수 없는 경지를 밟고 있다고 해서 네가 대단한 게 아니라고. 수천 년 쌓인 데이터를 집대성한 인간이 대단한 거라고. 너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적사각, <휘지> 中

 

데이터베이스(database, DB)는 여러 사람이 공유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 데이터의 집합입니다. 컴퓨터 시스템에 저장되며, 사용자의 데이터 요구에 실시간으로 응답하고, 데이터의 삽입, 삭제, 수정을 통해 현재의 정확한 데이터를 유지하며, 서로 다른 데이터의 동시 사용뿐만 아니라 같은 데이터의 동시 사용도 지원합니다. 동시대의 데이터베이스도 상당히 고도화되어서 한글, 한자 자료를 다루는데 크게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근미래의 인공지능의 데이터베이스라면 한글 서예를 다운로드했다고 해서 한자 서예를 못쓸 정도로 무리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를 한정하는 이유인 데이터베이스가 오염될 소지라는 이유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서예라는 전통문화의 순수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작중에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전통문화는 과거의 유형 및 무형유산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역할도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전통을 재해석하거나 시대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서예를 예시로 들자면, 한국의 근현대 서예는 유변(流變)이 거듭되었는데, 개화기(1876-1910), 일제시기(1910-1945), 국전 및 민전시기(1945-2000), 밀레니엄시기(2000-현재)로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근대기의 문인사대부 글씨와 그림은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을 계승하여 여전히 서와 화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미술전람회(통칭 ‘선전’, 1922)를 통해 서와 화가 분리되면서 서예와 사군자로 각각 명해지기 시작했고, 현대로 진입해서는 문인들의 서화가 아닌 직업 또는 전문 서예가의 글씨와 화가의 그림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따라서, 전통문화의 순수도를 따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화자가 “수천 년 쌓인 데이터를 집대성한 인간이 대단한 거라고. 너는 그릇에 불과하다고.”라고 말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인 줄 알았던 창작과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여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그릇이라고 인공지능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생존 본능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 3만년 전~약 4만 년전에 구인류 중 하나인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이 멸종되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의 경쟁에 밀려 도태되었다는 가설과 인구가 많은 현생인류에 흡수되어 멸종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어쩌면, ‘휘지’ 같은 인공지능 장인들도 현생인류에게 멸종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인간에게 절멸당합니다. 모쪼록, 휘지가 러다이트 운동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습니다. 좋은 소설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난네코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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