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문체와 유려한 묘사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로맨스라고 해서 처음에는 유배 온 화공 영감과 당돌한 아이 연녹의 이야기인가….그림을 통해 교감하고 사랑을 키워나가게 될까…그런 상상을 했는데 영감은 초반부에 죽어버리고 신들의 정원으로 장면이 전환됐다. 화공 영감이 손목을 잃어가면서까지 그렸던 요희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을 여운처럼 남기며.
다 읽고나니, 요희는 인간을 애정해서 신의 규율을 어기고 추방당한 ‘타락한 천사’의 전형 같은 캐릭터인데, 인간 모두를 애정한 것은 아니고 연녹이라는 여자를 지극히 사랑해 다른 인간의 파멸, 나아가 인간 세상의 파멸까지 아랑곳않고 연녹을 만나려 했다는 집착 로맨스였다. 작가 님이 “사랑의 질량에 질식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는 코멘트를 남겨서 더욱 확실해진 소설의 주제.
그런데 ‘질식’하는 과정이 좀 더 여유있게 그려졌으면 했다. 비록 집착 로맨스여도, 주인공 연녹이 요희에 대해 알아갈 시간을 줄 때 이야기의 흡입력이 더 높아질 것 같다. 가령, 초중반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검은뱀에게 연녹이 유대감 혹은 애착을 느낀다든지. 요희가 허물을 벗는 모습을 연녹도 보게 되는데, 그게 연녹을 유혹해서 자신을 마주 사랑하게 하려는 요희의 계획이라든지. 연녹의 검은뱀이 사실 요희였다는 엄청난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 양아버지의 고백보다는 연녹이 주도하는 좀 더 극적, 능동적인 과정일 수도 있을 듯하다. 댓글에 요희는 왜 이렇게 연녹을 사랑하게 됐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요희의 집착과 광기에 ‘이유’ ‘사연’을 부여하면 전개가 파격적이어도 독자들이 더 공감하고 이야기에 애착을 갖을 수 있다.
또 한가지, 독자로서 개인적인 소망(?)으론 화경제가 자세히 묘사되고 인물의 시점으로 경험하는 것을 읽고 싶다. 실존하는 축제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거울과 뱀, 허물, 불태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