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양
어떤 작품이 독자에게 읽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웹소설 시장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는 데 제목만큼 중요한 요소가 또 있겠나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브릿G만 해도 퇴근 후 글 좀 읽어보려고 들어오면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데만 30분 이상을 보내게 되거든요.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OTT를 보시면서 수없이 겪어보셨을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보는데 두 시간, 볼 영화를 선택하는데 두 시간.’ 보통은 고민만 하다 잠드는 경우도 허다하죠.
‘고양이, 마네킹,그리고 위스키’라는 작품은 일단 제목에서부터 눈길을 강하게 잡아 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마치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처음 보았을 때와 흡사한 끌림이랄까요? 역시 훌륭한 내용 만큼이나 제목도 중요합니다.
최근의 웹소설을 보면 한 눈에 전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주는 제목이 유행입니다. [회귀한 천마가 물리 치료사로 취업해서 재벌됨] 처럼 소재와 내용의 진행이 한 눈에 들어오면 독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작품을 선택하기에 매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이런 제목들이 작가 분들께나 독자 분들 모두에게 유용한 건 사실이지만 무릇 글의 제목에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저는 이 작품이 제목에서부터 독자의 관심을 잡아두는데 분명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목은 보통 언급된 단어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데(‘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처럼 말이죠) 작품을 읽어보시면 내용 전개에 중요하게 쓰이진 않지만 완독 후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2. 인조인간과 개조인간
이 작품은 만들어진 인조 인간과 고쳐진 개조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이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교묘한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은 없습니다만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에서 나올 법한 조용한 바에서 주인공이 혼자 위스키를 홀짝이는 장면은 왠지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익숙하면서도 멋드러진 풍경입니다. 로봇 공학과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 시대에서 언젠가는 사람처럼 고민하고 사랑도 하는 인조 인간이 툭 튀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는 주제인데, 이 작품에서는 조금 새로운 인조 인간이 등장합니다.
인조 인간 G-0309는 자신의 주인인 준영의 이마에 총구가 겨눠지는 순간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총을 겨눈 하란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되었을 때만 행동에 나서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습니다.
G-0309가 총이 발사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란에게 살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준영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는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에도 버그가 있듯이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감정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 번 생객해보아도 참 미묘한 부분이라 댓글로 작가님께 여쭈어볼까 고민도 했는데, 작가님이 어떤 설명을 해주시기보다 독자들의 추측이 맡기고 싶어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떤 답이든 작가님이 답을 해주시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가능성이 한 길로 묶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준영의 풀린 눈을 보고 그는 자신의 주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란을 막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인데, 어찌 보면 닮았다고도 할 수 있는 인조 인간과 개조 인간들은 사실 인간과의 관계보다 서로에게 훨씬 더 반감을 갖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조 인간들은 자신의 뿌리가 인간이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실제로는 인조 인간에 더 가까운 신체를 가졌으면서도 어떻게든 인간의 그림자 사이에 서려고 하지요. 이 작품에서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로봇 사이에 걸쳐있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이런 재미있는 작품들이 더 더 많이 나와서 곧 다가올 지도 모르는 인류 변화의 시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오미자 막걸리
저는 위스키를 살면서 몇 번 맛보지 못했습니다만, 조용한 바에 앉아서 쓰디쓴 과거를 회상하며 안주도 없이 혼자 마시기에 위스키만 한 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미자 막걸리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최근에 김장을 하고서 수육에 오미자 막걸리를 과하게 마셨다가 장염이 와서 3 주간 병원과 집을 오갔더니 이런 뜬금없는 뻘 잡담이 나오는 군요…
적어도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는 스트레이트로 위스키 한 잔을 곁에 두고 입술을 축이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