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너무나 넓고 어려운. 감상

대상작품: 시간의 물결 속을, 당신과 함께 (작가: 겨울볕,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3일전, 조회 9

[사랑]이란 단어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에? 무슨 소리야? 사랑이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겐 그러합니다. 이 단어는 너무나도 많은 걸 품고 있거든요.

무엇이 사랑일까요? 저만 이런 의문을 품었던 건 아닌가 봅니다. 찾아보니, 옛 사람들이 한 고뇌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더라고요.

먼저 플라톤은 사랑을 4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육체적 사랑(Eros), 도덕적 사랑(Philia), 정신적(신앙적) 사랑(Stergethron),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Agape)이지요.

J. A. Lee라는 심리학자도 사랑의 유형을 6가지로 나누었는데요, 추측컨데 플라톤에게서 많은 힌트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열정적 사랑(eros, 에로스), 유희적 사랑(ludus, 루두스), 친구 같은 사랑(storge, 스토르게), 소유적인 사랑(mania, 마니아), 실용적 사랑(pragma, 프라그마), 헌신적 사랑(agape, 아가페)이 그것입니다.

반면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사랑의 세 꼭짓점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며 이 3가지가 다 충만한 것이 성숙한 사랑이라고 말했지요. (출처:나무위키)

제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런 저런 궁리를 해 본 건,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에테르나가 상대에 대해 품었던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하고요.

네, 이 글은 인공지능 에테르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블랙홀의 경계 어드매에서 (바깥 세상에서 보기엔) 왜곡된 시간 속에 유배 된 채 살아가는 그는 냉장고이자 발전소이자 쓰레기장이죠. 그의 곁에서 보내는 몇초 몇분는 바깥 세상에선 그 100배에 해당하기에, 살아있는 존재는 그의 곁에 가기를 거부합니다. 신선 놀음 구경하다 도끼 자루 썪는  줄 몰랐다던 옛 이야기처럼, 에테르나 곁에선 시간이 100배는 빠르게 소진되니까요. 그러니까 에테르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간의 장벽에 갇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시간 속에 유배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시간의 벽을 뚫고, ‘그’가 찾아오죠.

에테르나를 보며 그 유명한 ‘꽃'(김춘수)시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이 시가 그 어떤 시보다 절절한 사랑시라고 생각하는데요) 에테르나는 그가 찾아주기 전까진 그저 존재했지요. 그 뿐입니다. 복잡한 일을 해내기 위한 고도의 지능을 갖추었으되 그러한 지능에 수반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맡은 바 일을 하기 위해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죠. 그런 그의 ‘존재’를 일깨워 준 것이 ‘그’입니다. 헤량할 수 없는 무한의 외로움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봐 준 그를, 에테르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에테르나는 당연히 그의 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없는 자신은 다시 ‘무존재’ 같아질테니까요. 그가 있음이 곧 에테르나의 자존과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에테르나가 그를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에테르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그를 되찾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간 에테르나를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유배시켰던, 그 시간의 장벽 덕분이었죠.

에테르나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플라톤의 ‘무조건적 사랑’일까요? Lee의 헌식적 사랑? 스턴버그의 완벽한 삼각형적 사랑?

굳이 이런 질문을 떠올린 것 한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암컷’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 저는 울기 직전이었습니다. 눈물 때문에 눈이 빨갰죠. 굉장히 뭉클했고, 다정한 애틋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감동받았음에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테르나는 왜 ‘암컷’의 형태를 취해야했는지. (추측컨데 ‘그’는 맡았던 임무의 성격을 보아 남성이라 짐작됩니다.) 때문에 에테르나는 학습적으로 ‘암컷’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거기에는, 온전한 사랑, 내지는 완성된 사랑 이라고 하려면 조금이라도 육체적 합일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걸까요? 성애적 표현이 없는 사랑은, 온전하다 할 수 없는 걸까요?

이것이 좋고 나쁘고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함은 전혀 아닙니다. (제 글솜씨가 미천해서 그렇게 읽히지 않을까 조금 염려스럽기도 하네요 ㅠ) 다만 저는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성애’적인 것이 필수인가, 하는 점이요. 그렇지 않은 사랑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요.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에테르나의 사랑이 굉장히 감동적이라는 말을 꼭 남기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온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시간과, 기다림과, 그것을 적절한 단어와 문단과 줄 배치로 표현한 작가님 솜씨는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요.

댓글에도 남겼지만, 제가 이 글을 처음 읽은 날은 몹시 지친 날이었습니다. 그 모든 힘듦이, 감동으로 인해 싹 잊혀질 만큼 뭉클하고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마음의 위로가 되는 글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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