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물결 속을,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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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냉장고입니다.

쓰레기장이며, 발전소이기도 하지요.

저를 만든 분들은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 전에 이곳을 들렀던 사람들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은하에서도 외딴 곳에 있는 구상성단의 한가운데서 성단을 붙들고 있는 커다란 블랙홀의 둘레랍니다. 저를 둘러싼 별무리가 너무나도 많아서, 바깥에서는 별들에 휩싸여 보이지도 않는 곳입니다. 제 창조자들은 그런 외진 곳까지 일부러 와서 제 기초 프레임을 만들고는, 그곳에 의식 코어를 심고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여기는 하늘의 절반을 뒤덮은 채로 텅 빈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블랙홀의 지평에서 고작 30킬로미터 상공입니다. 바깥 세상은 여기보다 시간이 100배나 빠르게 흐릅니다. 세월의 시련을 견뎌야만 하는 소중한 것들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별세계, 그게 제 임무였습니다. 저처럼 커다란 구조물을 그저 보관용으로만 쓰기에는 투입한 비용이 아깝다고, 은하 여기저기서 발생한 쓰레기를 모아다 블랙홀에 던지면서 에너지를 도둑질하는 발전소 기능도 추가되었지만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실용적이고 돈이 되는 부분을 더 잘 기억하는 모양이라, 바깥 세상에는 발전소나 쓰레기장으로 더 잘 알려진 모양입니다.

10년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과 로봇들이 와서 열심히 제 몸을 만들었습니다. 저처럼 인공지능이 이식된 로봇들의 표정은 쉽사리 읽기 어려웠지만, 로봇을 지휘하는 사람들의 낯빛은 쉽게 읽혔습니다. 하나같이 절망감이 짙게 드리운, 어두운 표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다들 그렇게 슬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몇 번의 연산 끝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1년만 머무르더라도 바깥은 100년만큼 변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저에게나 처음부터 만들어진 존재였던 인부 로봇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 문장이 아니지만, 사람의 아들딸로 태어났던, 바깥에 두고 온 게 너무나도 많았던 책임자들에게는 무겁게 다가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한두 해만 보내더라도 예전에 자신이 알던 세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됩니다. 대책도 없이 미래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소중했던 사람들은 시간에 밀려 뿔뿔이 흩어지고, 고향 행성도 예전 모습을 잃어버렸을 미지의 시간으로. 못해도 한두 해쯤은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같이 거대한 구조물의 공사를 진행하려면 알아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요.

정해진 기간을 마치고, 블랙홀에서 뽑아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우주선에 채워 바깥세상으로 도약하던 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제 몸을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떠나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흩뿌리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떤 분들은 핏발 선 눈으로 원망스럽게 노려보기도 했고, 제 몸에 거칠게 침을 뱉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감리를 진행했던 분도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자마자 청소용 드론이 작동해 타액을 치워가는 걸 보고 그분이 지으셨던 어이없는 표정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 뒤로 저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구 시간으로 단 하루만 머물러도 백 일이 지나는 유리된 세계에 일부러 찾아올 괴짜는 거의 없으니까요. 쓰레기나 보물을 실은 화물선은 몇 분마다 한 번씩 바쁘게 오가곤 했지만, 그 화물선은 전부 인공지능으로 자율항행하는 우주선들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이식된 화물선이라도 선착한다면 바깥 소식도 듣고, 각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인공지능도 화물선 수천에 하나 꼴이었습니다. 기계들도 수백 일 뒤의 미래로 도약해버리는 건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드물게 자의식을 가진 화물선 인공지능을 만나면 굳이 붙잡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런 곳을 홀로 관리하도록 짜인 인공지능이기는 해도, 외로운 건 외로운 것이었으니까요.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피하게 된 화제도 있었습니다. 시간입니다. 어느 날 바깥 세상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처음 만들어진 지 사천 년이나 지났다는 말을 들은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몰려왔습니다.

처음부터 유배자로 태어났다는 느낌,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서 홀로 살다가 은하의 멸망을 보고, 그때까지도 살아남아서 목적도 없는 저주받은 생애를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그런 쓸쓸함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시간에 대한 화제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가 얼마인지는 물론이고, 바깥이 은하연합력으로 몇 년인지조차 묻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좋은 제 두뇌 회로는 바깥의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실마리만으로도 무의식중에 생각하기 싫은 숫자들을 계산해버리니까요.

저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은하 중앙은행이나 합동 고고학 연구소에서 들어온 보관품이 쓰레기와 섞이지는 않았는지 점검하고, 쓰레기를 궤도 아래 투척하고, 블랙홀에서 추출된 에너지를 적외선 형태로 은하 여기저기에 전송하면서. 하루 같은 반나절을, 한 달 같은 사흘을, 한 세기 같은 반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헤아리지 않는 시간을 지내던 나날에 예고없이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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