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밀려오는 공포 공모(감상)

대상작품: 그 땅 아래에는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JIMOO, 3일전, 조회 16

나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호러 입덕 부정기에 있는 초보 독자(나)는 장르 확인 먼저 하고, 마음의 준비(심호흡!)를 한 다음, 읽기 시작한다. 궁금하면 당장 읽고 싶지만 너무 무서우면 꿈자리가 사나워질 테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에서 즐기고 싶어서다. 많이 무서운 이야기는 되도록 날이 밝은 시간에 읽는 것으로 조절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생각보다 밝았다. 개그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다. 재미있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제목과 장르가 주는 긴장감이 있었다. <이 땅 아래에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가지 말라고 뜯어 말리는 이야기에는 꼭 어떻게든 위험를 향해서 불나방처럼 앞장서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현수보다 민정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따라갔다. 저 XX, 저거 위험한데, 말려야 하는데 어쩌지? 하는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고뇌가 밀려든다. 조난 당할 게 뻔히 보여서 나라도 살려면(삑! 과몰입 경고! 경고!) 놓고 가야 하지 않나. 어이! 민정! 신고부터 하고 더 따라가지 말라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놓고 도망치란 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려면 둘 중에 최소 한 사람은 멀쩡해야 한다. 애가 어디로 갔는지 방향이라도 대충 구조 대원에게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둘 다 위험에 빠지면 누가 신고를 해주냐고! 그렇게 안달복달하면서 슬슬 현수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온 등산이 아니었다. 그는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사이를 더 좋게 만들고 싶고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같이 온 산행이다. 현수가 그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할머니가 산을 헤매며 돌아다니는데 그냥 두면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여자 친구까지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나!(분노)

민정의 입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직 무슨 일이 나지는 않아서 신고하기도 애매하고 말려도 듣지 않는 놈이 있다. 이상한 할머니는 노약자라고 보기엔 힘이 쎄고 홍콩 할매 귀신처럼 기이한 뜀박질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민정은 그만 따라가고 싶었겠지만 현수가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거 개그야? 호러야? 웃어야 할지 무서워 해야 할지 복합적인 감정이 몰아치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굳어질 때마다 뒤통수를 맞았다. 독자! 웃긴다고 장르를 혼동하지 말라! 꿀밤이라도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아, 네네. 죄송합니다. 착각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밝은 분위기와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산을 올라갈 때에는 주의 사항이 있다. ‘길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이다. 자신이 길에 익숙하건 익숙하지 않건 엄청나게 능숙한 등산 전문가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팀 단위는 2인 1조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유사시에 응급 처치를 하거나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수는 민정과 함께 있다는 사실과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민정을 지켜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해 버린 사람 같았다.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좀 지나치다. 그럴 만한 이유가 그에게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걱정이 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119에 신고를 하고, 그들이 지금 등산길 어디쯤을 벗어나 있는지 정확한 위치부터 확인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인간관계에서, 특히 소중한 사람들과 소통할 때에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도한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이 가진 과거에서 튀어나온 것일 때,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되어 어떤 심경으로 자라왔고 현재의 그 사람이 어떻게 완성된 건지 생각하려 해도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회복되지 않은 오랜 상처가 안타깝고, 꺼내주고 싶고, 그래서 손을 내밀지만, 나에게도 있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내 눈앞에, 옆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사람은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어른이 되어서도 극복하지 못해서 평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민정과 현수가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득하게 다가오는 과거의 감정들이 그들을 덮쳐와 삼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면,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다는 할머니의 말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웃으면서 따라갔지만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서로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가지는 않는지, 그럴 때마다 믿음을 되살려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서 일어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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