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屠龍)> 리뷰
이 글의 제목 ‘도룡屠龍’은 장자에 나오는 말이라 합니다. 주평만이라는 이가 천금을 들여 3년간 용을 잡는 기술을 배워왔더니, 세상에 용이 없어 그 기술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더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만약 용이 진짜 있고, 도룡의 기술을 계승한 후예가 그 용의 소문을 들었다면? 이러한 전제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소문의 용을 사냥하고자 세 인물이 모입니다. 용을 사냥하려는 이유는 각기 다릅니다. 홍량은 용의 여의주를 탐내고, 주거이는 자신의 도룡 기술을 시험해보고 싶어하고, 오사범은… 표면적으로는 용의 고기나 가죽을 보상으로 약속받았습니다. 실제로는 오사범도 자신의 무예가 용에게 통용될지 시험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심차게 시작한 이들의 사냥은, 시작하자마자 실패로 끝납니다. 소문의 용은 사실 용이 아니라 나가 요괴였던 것입니다. 홍량과 주거이는 달아나고, 오사범은 고전 끝에 나가에게 패배하지만 어째서인지 나가는 오사범을 살려둔 채로 떠납니다.
이렇게 용사냥 아닌 용사냥이 마무리 되자 세 인물들의 이야기도 끝이 납니다. 홍량은 여의주를 얻을 수 없게 되어 낙심하고, 주거이는 요괴가 있으니 용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에 찹니다. 오사범은 다시 한번 나가와 싸울 것을 결심합니다. 실제로 뒤로는 오사범이 나가와 재전을 치루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저는 이 지점에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원동력은 ‘도룡(용을 죽이는 것)’이고, 이는 장자에서 인용한 소설의 제목에서도 드러납니다. 용이 정말 있는가? 있다면 도룡 기술의 진가가 과연 드러날 것인가? 단순히 괴물을 쓰러트리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흥미를 가지게 되고, 그렇기에 세 인물 중 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원래 주거이이고, 주거이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용의 실체가 드러난 뒤 ‘도룡’의 이야기는 그냥 끝나버립니다. 요괴가 있으니 용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이들의 ‘도룡행’의 결말인 것은 괜찮지만, 그렇다면 소설도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지요. 이야기는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오사범에게 맞추어, 그와 나가의 결투우정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오사범입니다. 그런데 오사범의 이야기는 ‘도룡’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원래 제목이 암시했던 주제도, 제목과 관련있던 인물의 이야기도, 앞에서 이미 끝나버렸으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작품을 다 읽은 드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글-‘도룡’과 ‘나와 나가의 이야기’-을 이어놓은 것 같은 당혹스러움입니다.
제목은 이야기의 내용이나 주제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짧은 말일 것이고, 주인공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주제를 구현화하는 인물일 것입니다. 이 둘이 따로 놀지 않았다면 더 즐거운 글 읽기가 되었을 텐데,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