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해 사람들은 늘 궁금해 했었다. 그래서 묵시록이라든가 계시록이라든가 하는 소위 예언서같은 것들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에 심취해서는 온갖 소란을 떨기도 했다.
종교보다 과학이 더 일반적인 것이 된, 어떻게 보면 과학이 새로운 종교로 널리 퍼지된 현대에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과학적으로 그럴듯해보이는 상상력이 덧붙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장되어있으며 대부분이 다소 극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거라곤 종말을 기다릴거냐, 혹은 당장의 정신적 위안을 위해 스스로 끝을 맺을 것이냐 하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평소처럼 쓸데없는 걸로 싸우고 울고불며 시답잖은 이야기나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말이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전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시네필’이라고 하는, 꽤나 소수의 부류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향이 확실한만큼 그들의 마지막 화두도 자연스럽게 영화다. 그래서 종종 이 소설이 종말을 그린, 아포칼립스물이라는 걸 까먹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볼 영화를 찾으러 가는 한가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대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그것이 마치 눈 앞의 상황을 잠시 잊으려는 듯 다소 억지스러울만큼 가벼운 것과 비교되면서 일상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더 무겁게 느껴지며, 이 소설이 과연 아포칼립스물이라는 걸 잊지 않게 한다. 그것이 묘하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