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작성된 여러 리뷰들이 얘기하고 있으므로 제가 또 반복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네,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리뷰에서 재밌다는 점 외에 제 흥미를 끌었던 부분들 위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왜 [역술]인가?
역술은 역법에 의하여 여러 계산을 하는 기술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로, 흔히 점을 치는 일과 연결됩니다. 흔히 사주팔자, 토정비결 이런 쪽 및 무당, 점쟁이 등을 떠올리죠.
이 글에서 역술은 주로 ‘귀신’으로 대표됩니다. 초대 발행인인 할아버지가 초현실과 신비주의에 몰두했다거나 내공, 묏자리 감별 등의 주제를 다뤘다는 것으로 봐서는 전통신앙 및 점치기, 풍수와 도교까지 온갖 것을 망라하는 잡지가 아니었는가 싶습니다만
결국 이 잡지의 진짜 목적은 ‘귀신을 묶어두기 위한’ 것임이 밝혀지지요.
2. 여자 귀신은 없다.
“처녀귀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여자들은 ‘귀’가 되기 힘들다. 인간 세상에 떠도는 귀는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억울한 원혼이다. 여자들은 역사적으로 억울할 일이 별로 없다. 워낙에 세상 자체가 그들을 억울하게 하기에 억울함은 당연한 것이 되어 그냥 포기하고 죽는다. 그래서 죽으면 지긋지긋한 세상을 빠르게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인간 세상에 머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초대 발행인인 할아버지의 주장글 중 일부입니다. 그는 ‘여자=억울함’은 기본 값이라 죽어서도 세상에 남아있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요,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들, 그리고 각종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고 그 가해자가 일면식도 없는 남성 (예컨데, 이번 순천 사건처럼)인 경우도 잦음을 생각해 볼 때 몹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칫 성별을 가르고 편을 나누는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읽으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 부분이었답니다. 또한 글의 주인공이 왜 여자인지, 그녀를 괴롭히는 귀신들이 왜 모두 남자인지 등 소설의 세부 설정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기도 했고요.
3. 괴로움의 근원
사람 괴로움의 근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귀신들은 주인공을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힙니다. 모욕과 수치심을 주기도 하고, 불쾌하고 무서운 환상을 보여줘 겁을 주기도 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접시 인간’이라고 표현하지요. 귀신들이 함부로 던지고 놀며 깨트리는 장난감 쯤으로 자신을 여기는 것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의 가장 큰 괴로움이 ‘단절’에 있다고 느꼈어요.
작중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을 누구하고도 나누지 못합니다. ‘말을 하면 그에게도 찾아가겠다’는 귀신의 협박이 주효했고,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는 생각 역시 그런 상황을 심화시키지요. 그런 그녀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가까워진 한 남자에게 마음을 열고 마침내 그 진심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럴수가! 그 역시 귀신들의 장난질이였죠.
특히 이 에피가 다른 괴롭힘들에 비해 자세하게 설명된 것과, 그녀가 어린애 귀신 및 그가 두고 간 조약돌에 잠시라도 위안을 얻는 대목에서 저는 그녀가 ‘관계 단절’로 인해 가장 큰 괴로움을 겪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신들은 그녀를 자기들이 만든 감옥에 가두고 함부로 대하며 다른 정상적인 인간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지요. 세상 어디에서도 이해받을 수 없음에서 오는 공포와 괴로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네요.
4. 해결법에 대하여
매우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인 걸 알지만, 거칠게 나누자면 저는 ‘폭력성’은 남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음흉함은 여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주인공이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은 조금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우 폭력적이라고 느꼈거든요. 퇴마철 자체가 하나의 칼처럼 작용하고, 실제로 귀신을 해치우는 방법도 그것을 휘둘러 그들을 찌고 베르는 형태니까요.
못된 놈들을 없애고 끔찍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라면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가히 ‘영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에 더 나아가서 다시 귀신들을 붙잡아두고, 자신의 고통에만 천착하지 않고 세상의 다른 고통 받는 이들에까지 눈 돌려 구조 방법을 궁리한다는 면에서 더더욱 ‘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영웅이 궁리한 방법이 또 다른 ‘폭력’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역시, 살아서도 구제불능이었을 이런 못된 ‘귀신’들을 감화시켜 진심으로 반성시키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것은- 너무 판타지적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요. 결국 못된 놈은 매 만이 진정한 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다른 많은 분들이 언급 하셨듯이, 저 또한 잡지의 복간을 기다립니다. 구입은 교보에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