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처럼, 고백처럼 이어지는 문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막 읽기 시작한 무렵부터 애틋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가정도 부질없이 주인공인 여우는 모두 자기 책임이라고 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애정 없는 구석이 없어서, 꼬리가 여럿인데 왜 제목에는 꼬리가 없는지, 작품에는 익숙한 전쟁의 이름과 타임리프 태그가 붙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눈이 가고 발이 가고 결국에는 무턱대고 가까워진 나날이 제 추억이 아닌데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거든요…
현재에 만족하거나 체념했다면 굳이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첫 만남부터 손이 많이 가던 그대에게 홀리고 만 이상, 순리를 거스르고픈 순간이 오는 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것이야 말로 마땅히 정해진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반한 쪽이 지는 거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닌걸요.
천 년을 살며 중간에 생기고 사라지는 법도에 부인을 버리고 떠난 그대를 원망하긴커녕 붙잡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걸 보면 반해도 보통 반한 게 아니니, 가진 걸 다 바쳐 오직 그대를 살리려 하는 게 당연하겠죠. 천 년은 남자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흥망성쇠를 볼 만큼 긴 세월이지만, 그대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만난 서책 문 검은 요호가 때와 장소를 기가 막히게 맞췄다는 걸 의심하기엔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꼬리 다섯 개를 받고 초반에 이름만 나온 너구리가 비웃을 때 백 년도 못 산 저는 아찔하기 그지없어서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건국에 필요한 금을 줄 만큼 부족할 게 없던 여우가 인간의 몸 하나만 남은 자신이 아닌 죽은 낭군을 가엾이 여기는 걸 보면 이렇게 지독한 걸 사랑이라는 둥글둥글 예쁜 어감으로 불러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세파괴감정 같은 좀 더 경각심이 드는 이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부부의 연을 맺고 가락지를 하나씩 낄 때는 어화둥둥 내 사랑이었지만요…
오늘도 어여쁜 파도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서 일고 있겠지요. 오래된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다시 엮인 것처럼, 이 둘도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길 바라는 결말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사는 건 한 번으로 족한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