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확장, 음미(吟味)의 확장 비평

대상작품: 팀장님, 저 아저씨 책 먹어요! (작가: 샘물,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6월 30일, 조회 19

독서를 고상하게 이르는, 상투적인 표현 중에는 ‘책을 음미하다’가 있습니다. ‘음미(吟味)‘란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시가를 읊조리며 그 맛을 감상함.

「2」 어떤 사물 또는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생각함.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음미’의 의미가 본래부터 시가를 읊조리는 행위, 다시 말해 문학이나 독서행위를 향유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음(吟)’의 뜻이 ‘읊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시가를 읊는 일이 흔치 않으니, ‘맛’을 의미하는 ‘미(味)’에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말에서 ‘맛’이란 단순히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끼는 감각’만이 아니라,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기분’을 포함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책을 먹는 행위는 어쨌거나 ‘맛’에 치중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작중에서는 눈이 나빠서 책을 읽는 게 힘들어진 할아버지의 간절함과 기적을 통해 일어난 행위입니다만, 형태가 먹는 행위로 나타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말했듯이, ‘음미’는 기본적으로 ‘읊으면서 맛을 감상하는 행위’입니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맛’의 의미를 살려서 풀어쓰자면 ‘독서하면서 책이나 내용에 대해 느끼는 기분을 감상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눈이 나빠지셔서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체하는 행위는 책을 먹는 것입니다. ‘맛’의 일반적인 의미인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껴지는 감각’ 쪽으로 의미가 쏠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식서(食書)’라는 표현을 쓰면 역정을 내시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책을 먹고 음미하는 행위 역시 독서의 일종이라면 일종일 것입니다. 비슷하게,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읽거나, 전문 성우들이 더빙한 오디오북으로 듣거나, 만화나 영화 등의 매체로 표현된 것을 접하는 행위도 충분히 독서입니다. 모두 동등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독서 행위에 대해 여러 의문을 느끼곤 합니다. 하물며 본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서전에 대해서 회의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출판계는 전반적으로 불황인데, 도서전이 호황인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가장 쉽게 지목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는, 책과 독서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책은 항상 양질의 내용을 담은 종이 뭉치여야 하고, 책을 읽는 행위는 교양을 쌓는 고상한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읽는 것은 독서로 인정하지 않았던 풍조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화의 발달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종이책을 읽는 행위를 독서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시각을 주로 의존하고 촉각을 보조 감각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됩니다. 청각은 책장 넘기는 소리에 집중하거나, 독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을 틀어놓는 게 고작이겠죠. 그런데 오디오북은 청각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사용하는 감각 자체가 다르니 독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지요.

한편 전자책이나 오디오북과 같은 기술적 발달에 대한 반발심이나 신체적 한계에 의한 것도 있겠습니다. 전자책의 경우 결국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사용하는 일인 만큼 눈의 피로를 종이책보다 많이 유발합니다. 눈이 나빠지는 것, 전자파의 영향으로 머리가 아파지는 것에, 뇌가 도파민에 중독되는 것에 전자책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건 기성세대의 신체적 한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세대별 뇌 가소성 연구와 연결하면, 종이책 독서를 주장하는 기성세대가 상대적으로 디지털 독서에서 뇌의 활성화가 덜 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최근 세대일수록 전자책 독서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기성세대가 종이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뇌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보면 기성세대는 자신이 전자책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건 독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도서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봅시다. 본 작품은 2022년에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념하며 쓰인 작품 중 하나이며, 2024년 6월 30일인 오늘이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 날입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하여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계속해서 도서전에 대한 관심은 커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확실히 독서 인구는 줄고 있는데, 도서전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어요. 이쯤 되면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소수의 마니아층에 의해 겨우겨우 연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독서 마니아라고 한다면, 책이 한가득인 장소에서 고상하게 한 장 한 장 읽어나갈 것 같은 이미지 아닌가요? 하지만 도서전은 너무 왁자지껄하잖아요. 게다가 도서전에서는 책만 파는 게 아니라, 굿즈도 판매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게임 덕질하는 것도 아니고 굿즈를 판매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책을 입으로 베어 물어 음미하는 것만큼 이상하지 않습니다. 독서는 물론 한 때 식자층의 취미였으며 고상한 행위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이책이나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이나 다를 것도 없습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한쪽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못해 편협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를 보세요. 몸만 연로하시지, 독서 방식만큼은 차세대나 신세대를 넘어 미래지향적이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현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구세대와도 통합됩니다. 다시 말해, 할아버지의 ‘책 먹는 행위’는 통시적인 독서이자 독서의 확장입니다. 왜일까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독서는 책을 음미하는 행위입니다. ‘음미’의 ‘미(味)’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기분’입니다. 책을 먹는 행위가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쏠린다고 말은 했지만, 본래부터 음미는 감각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책은 종이 뭉치였으니 종이책에만 의존해야 하나요? 우리가 사용하는 다섯 감각 중에 그게 꼭 책을 ‘읽는’ 행위라는 이유로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더 옛날에 책은 말린 점토나 대나무 껍질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액정을 넘기는 것과 비슷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팝업북은 1200년대에 기초적인 기술이 발명되었습니다. 그때의 책을 음미하는 것은 지금의 음미와 다른가요? 문자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시절에 유럽 사람들은 수도사들의 낭서를 통해 성경을 접했고, 조선 사람들은 전기수들의 낭독으로 소설을 즐겼습니다. ‘청각’을 이용한 독서가 오늘날의 새로운 일인가요? 아닙니다.

향기가 나는 잉크나 프린트 기술은 이미 존재합니다. 스마트폰 내에서 향료를 합성해 냄새를 맡거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도 이미 개발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후각을 통한 독서, 후각을 이용한 책의 음미마저 일상적으로 하게 될지 모릅니다. 미각은 후각이 동원되어야 제대로 작동하는 감각입니다. 후각을 통한 독서가 일상이 된다면, 미각을 이용한 독서도 그로부터 몇 년 안에 실제로 이뤄질지 모릅니다. 상상해 봅시다. 시각으로 활자를 다 읽어내린 후, 종이를 씹는 겁니다. 종이는 침에 있는 소화효소를 통해 분해되도록 제작되고,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식품 등급의 향료와 인공감미료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겁니다. 비싸긴 하겠지만, 한 장 한 장의 맛이 달라지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이 변하고 내용 전개가 극에 치달을수록 맛도 강렬해질 것입니다.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쩌면, 작중에서 할아버지가 느꼈던 것처럼 작가의 슬럼프까지 미각으로 느낄 수 있을지도… 아, 이건 별로겠군요.

 

정리하자면, 책을 먹는 행위는 독서의 확장이자 음미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껏 고대 문명의 서판에서 양피지로, 종이로,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 변화하는 책을 접해왔습니다. 독서의 양상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고, 대중화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책을 먹음으로써 독서를 즐기게 된 것은 기적이지만, 동시에 독서와 음미가 확장될 미래의 편린이기도 한 셈입니다.

생각을 정신없이 굴리게 한 이야기를 써주신 샘물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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