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의뢰를 받고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제게 리뷰를 맡겨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고 제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써 보겠습니다. 물론 이 리뷰는 일개 독자의 의견일 뿐임을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편 ‘미신’은, 어떤 생물체들을 ‘채집’하기 위해 투입되는 병사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헬리콥터 조종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중 억세게 운 좋은 한 사나이에 대해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분량은 186매로 긴 편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1. 왜 배경은 SF여야 했는가?
제가 읽은 바로는, 그리고 작품 마지막에 적힌 작가님의 코멘트에 의하면, 작품의 주제의식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한 운명’입니다. 도입부의 ‘허트 로커’ 대사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설득력을 떠나서, 통상적인 확률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억세게 좋은 운수’가 실재하고,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작용으로 일어난다는 설명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신선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현대과학이 우주를 잘 설명한다고 확신하는 이과 출신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주팔자를 알아보며 흥미를 느끼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희한하죠. 양자역학이 규명했다는 비결정론적 우주론을 믿으면서도 (제가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믿는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탄생한 날짜와 시간에 따라 정해졌다는 운명을 궁금해하다니.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의문이 남았습니다. 이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이 세계관을 끌어온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요.
세계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주인공과 동료들의 목적은 어떤 괴생물체들을 ‘채집’하는 것입니다. 그 괴생물체들은 ’방사능을 먹는 미생물에 노출된 동물들‘ 입니다. 핵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에 방사능을 먹는 미생물을 살포했고,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즉, ‘방사능’->’미생물’->’동물’->’동물이 다른 생물을 먹고 그 유전자를 흡수’라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이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들여 구상한 흔적이 역력한 설명입니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설정된 괴생물체들이, 작중에서는 한낱 엑스트라들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총을 쏘는 등 나름 진화(?)를 통해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그들의 군락에 뛰어들었다는 ‘억세게 운 좋은 그 사람’이 아직 그들에게 당하지 않았다고 하며 작품은 끝납니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괴물들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기대 또는 예상하게 되는 ‘괴물들과의 숨막히는 대결과 승리 (혹은 패배)’라던가, ‘채집해 온 샘플을 통한, 괴물들에 얽힌 어떤 미스터리의 해결’이라는 줄거리를 시원하게 비껴가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붕어빵에서 팥을 빼 버린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독자는 설명이 4단계나 필요한 괴물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작품에 출연을 결심한 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그저 설정 속 존재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그 설정이 유기적으로 이야기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그들이 그냥 ‘괴물’, ‘적국 군인’, 또는 ‘오크’가 아니라 ‘방사능을 먹는 미생물에 노출된 동물들’이어야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다는 당위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괴물의 자리에 다른 존재들을 가져다 놓아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작품의 외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이 단편에서 괴물들의 근원에 대해 공들여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원작에서 할 테니까요.
2. 시점 문제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종종 전지적으로 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는 그 사람의 활약상을 다룬 부분 중 일부입니다.
그러는 한편 그 사람은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온 놈들을 하나씩 쏴 죽이면서 계단을 오르고 올랐다.
화자는 헬리콥터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 내부를 볼 수 있는 특수 장비가 없는 이상 건물 안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그와 대화를 통해 들었다면, ‘~올랐다고 한다.’ 라고 서술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3.반복되는 문장은 강조를 위해서인가?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이야기에 비해 분량이 긴 편입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비슷한 의미의 문장들이 반복되면서 분량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저는 반복되는 문장은 가독성 면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시선이 피로해지거든요. 이것은 아래 예시들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었고, 작품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느낀 인상입니다.
예를 들어 아래 문단의 경우, ‘하늘에 총 몇 발을 쐈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렇게 놈들 소굴 근처에다 차를 세운 뒤, 거기서 1명이 내렸고 그 1명은 놈들 소굴로 더 가까이 가서 하늘에 대고 총 몇 발을 쐈다.
먹이를 찾으러 멀리까지 나온 한 마리를 평소에 몇 번 채집해 봤기 때문에 그 원숭이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우리도 알고는 있었다. 주로 개미를 먹다 보니 결국 개미처럼 된 건데, 그래서 이름도 개미 원숭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채집조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늘에 대고 총 몇 발을 쐈던 것이다. 개미처럼 역할 분담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늘에 총 몇 발을 쏘면 일원숭이와 병정원숭이가 몇 마리 튀어나올 거니까 바로 그걸 유인해서 잡으라고 연구실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복하지 않아도 독자는 하늘에 총을 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처럼요.
먹이를 찾으러 멀리까지 나온 한 마리를 평소에 몇 번 채집해 봤기 때문에 그 원숭이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우리도 알고는 있었다. 주로 개미를 먹다 보니 결국 개미처럼 되어서 이름도 개미 원숭이가 된 것이다. 개미처럼 역할 분담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들을 자극하면 일원숭이와 병정원숭이가 몇 마리 튀어나올테니, 그 녀석들을 유인해서 잡으라고 연구실 사람들이 말했었다.
놈들 소굴 근처에서 차가 멈추었다. 한 사람이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하늘에 대고 총 몇 발을 쐈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뒤인 2042년에 완전 퇴역을 할 정도로 블랙호크라는 놈이 늙기는 했지만, 노익장이라는 게 뭔지 보여주는 게 블랙호크기 때문이다.
‘라는’이라는 말과 ‘블랙호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의 화자가 미래의 얘기를 하는 것도, 화자가 말하는 시점이 2042년 이후인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 작품 전체를 읽어보았을 때 2042년이라는 서술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뒤 완전 퇴역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늙기는 했지만, 여전히 노익장이라는 게 뭔지 보여주는 녀석이 블랙호크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문단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걸로 지지고 볶아 봤자 정작 그 사람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른 걸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자기가 운이 지지리 좋다는 사실에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같지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운이 좋은 건지에서는 나머지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자기 자신이 왜 그렇게 지지리도 운이 좋은 건지에선 나름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는 거다. 그 사람이 그렇게 나름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는 걸 내가 알게 된 건 바로 얼마 전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에게 이렇게 강의하듯이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도중에 지치게 됩니다. 잘 정제된 문장으로 짧게 정리하면, 완독률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 문단 전체는 아래 한 문장으로만 써도 충분합니다. 참고로, 문장에서 ‘~는 것’을 자주 사용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되었지만, 그도 자신이 운이 좋은 이유에 대해 나름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반복되는 어구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살아 있는 도미노’라는 표현은 참신하고 좋았지만, 두 번 나오는 순간 그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 있는 도미노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결국 그 사람을 따라간 5백 마리만 남은 거였는데,
(…)
그래서 우리 지원조가 그 입구에 있던 놈들을 살아 있는 도미노로 만들 수 있었다.
위와 비슷하게, ‘어디 뭐 이슬람 믿는 나라’ 라는 표현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고유명사처럼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중동 어디’, ‘그 이슬람 국가’ 하는 식으로 다른 표현으로 바꿔가며 서술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나라 이름을 지정하는 편이 최선이겠죠.
아래 문장의 경우 불필요한 서술이 줄줄이 달려 있고, 별 내용도 아닌 문장들이 중간에 끼어 있어 글을 읽는 호흡에 방해가 됩니다.
투철한 직업 정신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애국심 때문에도 그럴 수도 있겠다. 개근을 한 게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개근을 한 건 그렇다 치자 이거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다칠 수가 있을까. 그것도 6년 동안이나. 내 말이 그 말이다.
저도 예전에 썼던 작품들 중에 이렇게 장황한 느낌의 서술이 많았습니다. 최근에서야 잔가지들을 전부 쳐내기 시작했는데 글이 훨씬 깔끔해지더라구요. 감히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그런, 그렇게’를 과하게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들만 정리해도 가독성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위 예시의 경우, 저라면 아래 두 문장으로 정리했을 것 같습니다.
투철한 직업 정신이나 애국심 때문을 개근을 한 거야 그렇다 치자. 6년 동안이나 투입되면서 단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장이 자잘하게 나눠진 위와는 반대로, 한 문장이 너무 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단 그 미생물이 방사능을 확실히 먹어서 없애주지만 그 미생물에 노출이 된 생물이 이상하게 변하게 되는 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한반도에 수백 개의 구역을 정해 놓고 거기에다만 미생물을 집중 살포한 뒤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호흡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없어서’ 뒤의 ‘그래서’나 ‘이상하게’ 뒤의 ‘변하게 되는 건’ 처럼 어색한 반복 단어도 있습니다. 전자에서는 ‘그래서’는 삭제하고, 후자는 ‘이상하게 변하는 건’ 정도로 쓰면 어떨까 합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은 ‘그’가 4번이나 나와서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서 그런 상황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4.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상황들
한편 논리의 점프로 인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서술도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들의 공격성과 신체능력이 끔찍한 거처럼 먹성도 그렇게 끔찍하다는 점이 다행이기도 했다. 그 J-3 구역에선 그놈들이 주로 먹는 개미는 당연하고 왠만한 식물도 없을 지경이라 오죽했으면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지랄까지 벌였던 것이다. 그래서 건물 옥상에 착지하고 나서도 채집조 그 4명은 총 한 발을 쏘지 않았다. 그 4명은 …(중략)…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먹성이 끔찍해 자기들끼리 잡아먹을 정도라면 상당히 굶주렸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이 자체로는 여유를 부릴 만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굶주린 동물이라면 위험할 테니 더욱 조심해야겠지요. 채집조 4명이 총을 쏘지 않은 건 아마도 주변에 원숭이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굶주린 원숭이가 보였다면 당연히 발포했을 테니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지랄을 벌였다.’ -> ‘원숭이들의 수가 줄어 옥상에 착지했을 때 원숭이가 없었다.’ -> ‘채집조 4명은 총 한 발 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중간에 뭔가가 빠져 있으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도 서술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때를 생각하면 그 사람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지원조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문을 열고 그렇게 옥상으로 나왔을 때도 그 사람을 쫓아오던 원숭이가 좀 있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원숭이들을 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괜히 지원조겠나.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 옥상으로 나오는 꼴을 보게 되니 뭐랄까, 우리가 감동을 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우린 그냥 구경만 했다.
지원조 사람들이 그냥 구경만 한 게 어떻게 ‘지원조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는 말의 근거가 되지요? 그 사람을 어서 구해내는 것이 지원조의 임무이므로 구경만 한 것은 그저 직무유기인데요. 반어법이었나요? 게다가 ‘그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꼴’이라고 표현하는 뉘앙스가 어쩐지 부정적인 느낌이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사람’을 보는 화자의 시각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니까요.
그 밖에 헬리콥터에서 이동하는 동안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조금 이상합니다. 자신의 손금이 좋다는 얘기 정도야, 굳이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헬리콥터에서 대기하거나 할 때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작품 내에서 그럴 시간이 없다는 투로 설명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군대에서 보초를 서거나 하면서 동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5. ‘손금’과 이야기에 대하여
이 단편은, 작가님이 마지막에 쓰신 것처럼 ‘손금을 통한 예측이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상황’을 다룬 작품이며, 아쉽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딱 멈추어 서버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국 ‘억세게 운이 좋은 손금을 가진 남자’는 그 손금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남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손금을 믿고 싶은 분들께는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 (아마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게는 읽을 동기가 부족합니다. SF 적 요소가 흥미진진하게 배치되는 등 읽는 재미가 있거나, 혹은 작품이 놀라운 통찰이나 메시지를 품고 있어야 독자들을 유혹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의 의뢰에 감사하며 쓰다 보니 리뷰가 길어졌습니다. 브릿지에 몇 안되는 SF 작가님이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쪼록,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