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해석은 작가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난해해 보이고, 또 실제로도 난해한 이 글을 해석하는 열쇠는 글의 4장에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글이 어떤 글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당신들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확신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들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선언을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이 작가에 의하여 꾸며내어진 이야기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선언이다. 소설은 허구적인 이야기이며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그러나 평범한 소설에서 작가는 독자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한다. 작가는 소설 안의 등장인물들 간의 상호작용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이를 통해 독자가 소설 안의 세계에 몰입하여 같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준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는 이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의 뜻과 독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비슷하게 맞추어 놓는다. 이는 장르가 판타지거나 SF여서 작가가 독자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서술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용이 등장하고, 초광속 비행이 가능한 세계에서도 책상은 책상이고 의자는 의자이다. 소설 속에서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 책상에 손을 올렸다고 서술될 경우, 독자는 이것이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단어에 새로운 뜻을 부여하고 싶다면 작가는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단어가 가지는 근본적인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인용구의 첫 문장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정말 작가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듯하다. 만약 독자가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다면, 독자는 소설 속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게 된다.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독자는 더 이상 소설 안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고, 소설 밖으로 내쫓겨나간다.
작가는 다음 문장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작가는 독자가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신들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독자를 소설 속에서 내쫓은 것은 바로 작가 자신이라고 선언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직접적으로 소설 속 이야기와 독자를 분리시키며, 이 안의 내용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독자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어떨까? 등장인물들을 분석하기 전에 한 가지 가정을 해보도록 하자. D는 이 소설에서 작가 그 자체이다. 따라서 D는 소설 속 상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소설 속 단어들에도 자기 멋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설의 10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당부분 설명할 수 있다. D는 A, B, C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아메리카노로 시킨 커피를 카라멜 마끼야또라고 주장하면서도 A, B, C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A, B, C, D가 공유하는 성질도 찾아낼 수 있다. 나레이터에 의하면 커피가 카라멜 마키야또가 맞다고 주장한 순간 A, B, C, D는 비로소 똑같아졌다. 따라서 A, B, C는 소설 속으로 내려온 작가 D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를 참고하여 생각해보면 이 특성은 ‘참인지 거짓인지 독자가 판단할 수 없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정을 바탕으로 A, B, C에 대해 더 살펴보자. 우선 A와 B를 살펴보면, 그들은 소설 속에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비록 독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에 따라 행동하지만 적어도 그들에게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가 명확하다. 1장에서 볼 수 있듯이 A는 진진자라가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엇이 진진자라이고, 무엇이 그냥 자라인지는 구분해 낼 수 있다. B또한 자신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지금 누구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름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C는 다르다. C에게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약간 논리적 비약을 해보자면 C는 소설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규칙, 즉 소설 속의 단어들이 작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C의 정체는 말 그대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다. 여전히 작가의 의지를 그대로 믿으며 움직이고 있는 A와 B와는 달리 C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C는 자신이 등장인물이라는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며, 진실에 가까워진 그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었듯이 자신이 정신병원에 들어갈만한 부류의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A, B와 C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것은 5장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A와 B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일관성이 있는 주장을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비록 독자들이 보기에는 이상할지 몰라도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논리적이다. 하지만 C의 경우는 다르다. C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틀린 주장을 한다. 서울에 산다면서 부산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C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 자신이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소설 속 단어들이 작가에 의해 마구 조작되고 있다는 그에게 더 이상 논리적으로 참인 명제와 거짓인 명제를 나누는 의미는 없다.
이후 A, B, C는 D를 찾아 떠나는데,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논리들을 종합하여 이를 분석해보면 그들이 각각 여정의 끝에서 맞이한 결말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가능하다. A, B는 D를 찾는 도중 각자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관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하지만 A는 기절해 병원에 입원하고, B는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혀 연행되면서 D를 찾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끝나버린다. 이는 소설 속으로 내려와 전지전능한 힘을 휘두르는 작가가 그들이 소설 자체를 붕괴시켜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행한 조치라고 할 수 있겠다. A와 B가 그들의 행동 속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면 소설 속의 규칙이 무너지고, 소설이 이야기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8장에 등장하는 경찰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C는 A와 B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이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챈 그는 A와 B가 의도치 않게 행했던 것처럼 그에게 부여된 행동원리를 밀어붙여서 소설을 붕괴시켜 작가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곧바로 소설의 붕괴를 막고 있는 경찰과 직접 접촉하여 작가와 만날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이를 통해 C는 자신이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작가에게 들키고 말았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이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안 캐릭터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C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왜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A, B, C를 통해 작가가 묻고자 하는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다시 10장을 살펴보면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A, B, C는 나름대로 사실에 가까이 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D는 그들이 심각한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말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린다. 등장인물들에게 의지를 부여하고, 행동을 유도하고, 결론까지 내릴 수 있는 작가를 등장인물들이 거역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를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자와 등장인물 모두에게 작가는 소설 속 이야기를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고, 이를 믿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결말부에서 D가 A, B, C와 함께 당구를 치러 떠나버리는 것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의 세계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떠나버리며, 소설 밖에 있는 독자는 초대되지 않는다. 혼란에 빠진 독자에게 작가는 더 이상 세계에 대해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독자는 소설 속 이야기를 우리가 사는 현실에 그대로 대입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를 믿고 어디까지를 믿지 않을지는 오직 독자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