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깨진 모래시계 같은 영원이더라도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8(영원) (작가: 0.0,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6월 13일, 조회 31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할아버지 할머니 회춘하다>에서는 황금사과를 먹고 회춘한 노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 일상 코미디는 영원히 이어질 듯 보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노부부의 꿈에는 자신들의 남은 수명을 나타내는 모래시계가 나오는데, 이 모래시계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모래가 다 쏟아지는 언젠가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소설의 제목을 ‘8’이라 쓰고, ‘영원’이라 읽는 것은 아마 무한자(∞)를 작품 제목으로 올릴 수 없는 브릿G 사이트의 시스템적 한계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사실, 실제로 그러한지 테스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무대의 뒷면을 엿보는 것을 넘어서, 무대장치의 조종실까지 망치를 들고 침입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대신, 저는 이 ‘8’이라고 쓰고 ‘영원’이라고 읽는 상황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네. 8을 모래시계의 상형으로 보는 것입니다.

 

멸망을 향해 치닫는 세계 속, 인간에게 불로불사의 영생을 부여하려던 계획은 불로와 불사가 서로 나뉜 채 이루어졌습니다. 영원한 젊음은 차라리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영원한 불사는 장기가 다 썩어가도 목숨이 강제로 부지되는 명백한 실패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영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모래시계의 한쪽이 차오르면 다른 한쪽은 응당 비워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 영원과 영생은 항상 불충분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젊음을 가진, ‘나이를 거꾸로 먹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손에 넣은 반쪽에 만족하고 다른 이들이 이를 가질 수 없도록 사다리를 걷어찼습니다. 일본에만 전국 약 130곳의 영생 연구소를 일제히 폐쇄하는 것입니다. 모래시계의 모래를 한쪽으로 몰아준 뒤, 넘어갈 수 없도록 가로로 엎어둔 것과 비슷한 형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세토와 쿠로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죠. 두 사람은 각각 세이메이 연구소의 연구자와 실험체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정을 나누고 교감하며 다른 감정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세토는 자신의 손으로 반쪽짜리 불사를 손에 쥐여준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서로 괜찮은 척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죠.

세이메이 연구소는 곧 폐쇄될 것이고, 처음부터 윤리적이지 못했던 실험은 이제 불법적인 게 되었습니다. 세토, 그리고 그 친구인 이시미, 마키, 타카세는 쿠로다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세토에게 사용하기로 합니다. 이 마지막 기회를 통해 세토는 쿠로다와 비슷한, 어쩌면 좀 더 나은 형태의 영생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세토의 상태를 들키면 세토는 해부될 것이며, 자신들은 어떤 실험을 했는지 고문을 당할 것이라며 자조하는 친구들의 발언에서 유추가 가능한 부분이지요. 결국, 그들은 세상이 엎어둔 모래시계를 다시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시 일으켰다는 것은, 모래가 다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래시계는 무한히 뒤집으며 영구히 시간을 잴 수 있는 일반적인 모래시계가 아닙니다. 바닥이 깨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영생이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끝의 가능성은 다양합니다. 세토와 쿠로다가 사용하는 약물이 끝내 고갈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과 달리 세 친구는 영생을 살고 있지 않으니, 친구들의 죽음이 세토와 쿠로다의 영생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 멸망을 향해 치닫는 세계, 갖은 전쟁과 폭격으로 인해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들을 끝내 사로잡은 정부나 어떤 세력이 그들을 고문하고 해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거머쥔 불사가 본래 원했던 영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어느 가능성에서든 그들은 비극적인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멈추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전부 흩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계속해서 모래시계를 뒤집습니다.

그 원동력은 우정, 그리고 사랑입니다. 세토와 쿠로다가 서로를 사랑하고, 세 친구와의 우정이 있기에 그들은 험난한 길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사랑이 있는 한 영원은 영원히 유지될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영원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영원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꺼내어주신 0.0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