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유튜브는 사용자가 어떤 분야의 영상을 주로 보는지는 물론이고 영상을 끝까지 보는지 안 보는지, 어떤 썸네일이 화면에 뜰 때 사용자의 시선이 몇 초간 멈추는지 등등까지 계산해 그 알고리즘을 짠다고 합니다. 어떤 날은 제가 아내와 저녁 메뉴를 상의하며 오늘은 조금 얼큰한 걸 먹고 싶다고 말 한 직후에 유튜브를 켰더니 뜬금없이 김치 콩나물국 끓이는 영상이 화면에 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스마트폰이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평소에도 듣고 있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짤 때 영향을 준다고 하더군요.(진짭니까? 이거야 말로 괴담 아닙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소오름.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읽고나서 유튜브가 또 다른 수작질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공포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만 어쩌다 한 번 보게 된 영상때문에 자꾸 추천에 공포 영상이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키지 않지만 주인공은 그 빌어먹을 호기심을 막지 못 하고 결국 그 영상들을 보고야 맙니다. 유튜브는 그렇게 야금야금 주인공을 무너트렸습니다. 주인공은 마지막 영상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신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지만 그 이후에 결국은 그 영상을 클릭했을 겁니다. 이미 유튜브의 수작으로 공포에 중독됐거든요. 결국 주인공 자신도 그 바이올린 소리와 닮은 비명을 질렀겠죠.
주인공이 안 누르면 되지 않았냐고요? 결국은 그의 선택이었다고요? 글쎄요. 우리는 늘 자신의 자유의지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은 그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거기까지 가서 누르지 않을 수 없었을겁니다.
이 점입니다. 유튜브는 우리의 취향을 존중해 영상을 보여주는 척 하면서 한편으로는 영상들로 우리의 취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결국엔 당신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아, 유튜브 중독! 어쩌면 결국 이 작품은 최종적으로는 그 점을 경고하는지도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주인공이 무심코 그 공포 영상들을 클릭하는 것처럼, 당장 저만해도 스마트폰을 키면 아무 생각없이 빨갛고 하얀 그 빌어먹을 재생버튼을 눌러서 유튜브가 제시한 영상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청한 표정으로 봅니다. 그렇게 하루에 몇 시간이나 쓰고 있었을까요? 아아, 그렇게 삶이 망가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지금 깨달았냐??)
유튜브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