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홍기연(책도둑) 작가의 장편 연재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의 전자책 출간본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후 언급하는 내용 및 인용 중 연재분과 상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맨스와 스릴러, 언뜻 보기에는 크게 연관이 없는 장르 같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둘은 매우 비슷한 장르다. 모든 사랑의 처음과 끝이 행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랑은 매우 드물다. 공포를 느낄 정도로 고조된 긴장감 가운데 뜻하지 않게 이어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사랑과 전쟁’이라는 옛 TV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때로 시작부터 살벌한 로맨스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가지 않더라도 각종 막장 드라마가 증명하는 것처럼 남의 사랑은 극한에 몰렸을 때 더욱 재미있는 법이다.
현실에서 가문의 반대와 치정, 불륜처럼 극단적인 어려움으로 위기를 맞은 사랑이 끝까지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이야기 속에서는 위태한 사랑 끝에 더욱 큰 연대감이 남는다. 허구의 사랑에는 무엇도 극복하는 힘이 있다.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긴장감이다.
로맨스 속 인물이 위기를 만나는 과정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알고 보니 가문이 원수지간이다. 이 구조에서 ‘가문’이라는 낡은 요소는 지금의 창작물에서 잘 쓰이지 않지만, ‘원수지간’이라는 설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족에게 금전, 정신적인 해를 가한 적이 있다면, 설령 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그 잘못이 용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관계는 처음부터 매우 극적인 갈등이 예고되어 있다.
사랑에 긴장감을 심는 고전적인 장치로 신분 차이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신분’이라는 구시대적 관습이 사라졌지만, 역시나 ‘사회적 지위 차이’는 존재한다. 사람이 사는 한, 사회의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가문이 사라져도 원수는 있고, 신분이 사라져도 차이는 남는다. 연인 간에 사회적 지위의 차이, 특히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때 역시 사랑이 흔들릴 수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성별이 지속적인 사랑을 가로막는 경우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합법화되지 않은 동성 결혼은 출생 시 강제 지정되는 성별이 같은 두 사람에게 안정적인 동거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연인의 성별 역시 작가의 설정에 따라 로맨스에서 굉장히 현실적이고도 극적인 장애물일 수 있다.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한 사랑과 갈등의 종류 사이에서 작가들은 오늘도 몇몇 개를 조합해 그 안에서 나름의 배경을 만들고 인물을 거닐게 한다. 만나고 뜨겁게 사랑하다 위기를 맞는 로맨스와 스릴러의 사이 어디쯤에서 독자들은 사랑이 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거나 한순간의 긴장감에 머리를 감싸 쥔다. 그래도 결국은 다가올 해피엔딩을 기대하면서.
여기 사랑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유산 상속으로 인한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바이올렛 골드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는 소녀가장 바이올렛은 이전에 일하던 곳에서 받은 퇴직금이 똑 떨어져 갈 즈음, 메리요트 저택의 하녀로 지원해 뽑힌다. 저택에서 일하게 된 설렘과 한편의 긴장감을 안고 집을 떠난 그녀에게 막상 그곳 사람들의 대우는 수상스럽기만 하다.
하녀장은 사람을 급하게 구하느라 바이올렛의 하녀복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서 전임자인 케이트의 옷을 임시로 입으라고 한다. 알고 보니 저택에서 주최하기로 유명한 지역 축제를 고작 한 달 남기고 하녀 케이트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그녀 대신 뽑힌 바이올렛은 미심쩍은 하녀 케이트의 실종에 관심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을 파헤칠수록 더욱 깊은 의문만 생길 뿐이다. 이 수상한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을 무수히 둘러쌀 시선과 눈치를 뒤로하고 케이트는 사라진 것일까.
아니, 그녀는 제거됐을지도 모른다.
케이트가 사라졌다.
새로운 하녀를 뽑아야 함은 자명한 일이었다.
책도둑 작가의 장편 연재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은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메리요트 가(家)의 단풍나무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소녀 ‘바이올렛 골드’의 위험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그려내는 소설이다. 돈을 위해 메리요트 가에 고용된 하녀 바이올렛. 그러나 그녀의 앞에 드러나는 것은 정말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잔인한 쟁탈전이다.
작가는 ‘유산’으로 인한 싸움이 절정에 달하기 전까지, 메리요트 저택에 새로 고용된 바이올렛 골드의 시선으로 그곳의 비밀을 먼저 캐 나간다. 이 저택에서 발생할 세 건의 살인이 일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독자가 살인 장면을 먼저 본다면, 그 앞뒤의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축제 기간 한 달 전에 때마침 새로 고용된 하녀라는 점에서 바이올렛은 독자들을 안내하는 길잡이로 가장 적절한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도 저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독자를 서사의 심연으로 인도한다.
바이올렛은 가장 먼저 ‘케이트’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긴다. 입게 된 옷의 주인일 뿐 아니라 그녀의 전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져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용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밀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바이올렛이 케이트의 가장 결정적인 비밀을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당장 함께 일했던 하녀들과 함께 근무해야 하는 바이올렛에게 케이트의 소문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들려온다.
“친구랑 붙어먹은 동성애자 주제에”
정황으로 볼 때, 케이트는 저택의 또 다른 하녀인 조세핀과 연인 관계였다. 갑자기 저택을 나간 케이트 대신 바이올렛이 들어오게 되었고, 조세핀은 바이올렛을 이유 없이 멀리한다. 억울한 마음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던 바이올렛은 의도치 않게 조세핀과 케이트에 대해 다른 하녀들이 하는 험담까지 듣게 된다. 독자는 여기에서 이야기의 배경이 완전한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메리요트 저택이 있는 지역에서는 적어도 동성의 사랑이 금기시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독자는 흔히 판타지 소설 안에서 현실보다는 한 단계 나아간 자유로움을 원한다. 그렇기에 동성의 사랑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소설들도 다수 존재한다. 많은 작가가 오히려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그리기 위해 현실이 아닌 판타지 장르를 선택한다. 하지만 책도둑 작가는 의도적으로 판타지 세계관 내에서 도덕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배경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며, 지금은 여전히, 자유로운 사랑이 제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성 간의 로맨스가 자유롭지 못한 소설의 배경을 단순히 자극적인 유희와 흥미 요소로 이용했다면, 그것은 비판의 여지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동성 간의 사랑을 강제 커밍아웃 장면까지 삽입하며 가벼이 소비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 안에서 여성 간의 사랑을 중심 소재 삼아 단단히 기틀을 잡고, 거기서부터 로맨스와 스릴러의 가지를 섬세하게 뻗어간다. 결정적으로, 이 저택에서 여성 간의 사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 바이올렛 역시 저택의 아가씨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재능을 두루 겸비한 메리요트 저택의 로즈미나 부인과는 대조적으로, 엘리자베스에게는 글을 쓰는 재능이 있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케이트에게 엘리자베스와의 대화는 지적인 만족을 충족하는 시간이다. 후에 밝혀지지만, 엘리자베스는 바이올렛이 가장 좋아하던, 남자 필명으로 활동하던 작가이기도 하다.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에서는 여성에게 지적인 활동 또한 제한된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히 보수적인 배경 분위기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비밀스럽게 지식을 탐하는 둘의 만남은 공개할 수 없는 사랑을 고조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쓰인다.
케이트에게서 바이올렛으로 뻗어가는 로맨스의 가닥은 신비한 방식으로 대를 이어간다. 현실보다 더 가혹한 환상에서 각각의 사랑은 독자를 긴장시키기에 알맞을 만큼 무르익는다.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 소설에서 여성 인물들이 로맨스를 담당한다면, 남성 인물들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의심스러운 이곳에서 믿을 만한 남자는 한 명도 없다. 가장 먼저 바이올렛의 눈에 수상히 보이는 남자는 정원사 ‘라울 데이커’다. 그는 밤 산책 중 우연히 만난 바이올렛에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역시 의도하지 않은 두 번째 만남에서 둘을 본 치매 노인 모르슨 부인은 경악하며 “왜 돌아왔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바이올렛과 독자들에게는 이 한마디가 라울을 의심하는 결정적인 단서다.
라울의 대척점에는 마부 제임스가 있다. 라울은 오히려 바이올렛에게 이 마부를 조심하라고 한다. 걱정하는 듯 남기는 이 조언은 바이올렛이 잠시 라울을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한다. 제임스가 여성에게 변태적으로 집착한다는 점에서 매우 질 나쁜 사람은 맞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바이올렛에게 슬쩍 귀띔했다고 해서 라울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독자의 추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다. 놀랍게도 라울은 이 소설에서 진범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저택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수상한 남자들은 찾아온다. 엘리자베스의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열린 축제. 저택의 유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중반까지 로맨스가 주되었다면, 축제 이후로는 피바람이 분다. 저마다 신분과 돈으로 엘리자베스를 ‘물건’처럼 사려고 했던 남자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처음에는 경쟁자에게 죽임을 당한 듯한 라이언의 시신이, 그다음에는 범인으로 몰리던 루카스와 마부 제임스의 시신이 나란히 발견된다. 죽은 사람은 말하지 않기에, 독자들은 축제의 손님들 사이에 끼어 어느새 추리에 몰입한다.
독자는 이미 살인 장면을 공개한 작가의 의도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라울 데이커에게 있음을 안다. 생각보다 먼저 드러난 정답으로 인해 추리의 재미가 반감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라울의 살해 ‘동기’까지 밝혀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라울이 제임스를 사주해 루카스를 죽여야만 했던 이유, 저택의 주인 로즈미나의 아들이 라울이었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작가가 캐릭터와 인물 관계에 공을 들였음은 결말에서 증명된다. 물론 로즈미나와 엘리자베스가 모녀지간치고 크게 공통점이 없음이 이야기 초반부터 반복 암시되기에 둘이 혈연관계가 아님은 충분히 짐작된다. 하지만 라울이 로즈미나의 아들임을 알 수 있는 단서는 크게 나오지 않는다. 메리요트 저택의 남작과 남작 부인이 동시에 바람을 피웠지만, 후계자로 인정된 건 남작의 딸 엘리자베스뿐이다. 잊을 만하면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소설 내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여기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라울은 엘리자베스를 키우던 모르슨 부인의 보육원 방문으로 우연히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저택에 스스로 찾아간다. 어머니의 허락으로 정원사가 된 그는 엘리자베스 대신 자신이 유산을 상속받을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계략에서 엘리자베스를 구한 건 바이올렛이다. 흥미로운 결론이지만, 이 소설에서 좋은 남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끼리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다 저마다의 파국을 맞는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했다더라도, 그 목적이 불순했기에 목숨으로 심판받는다. 가짜 사랑과 권력 다툼의 소동이 모두 가라앉은 뒤에 남는 것은, 연인 엘리자베스를 남자에게 시집보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워했던 바이올렛의 진실한 사랑이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바이올렛과 사랑과 학문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맺으며
누군가는 이 소설에서 스릴러보다 로맨스의 힘이 강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실제 서사를 차지하는 비중으로만 보았을 때는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은 로맨스도, 스릴러도 따로 떼어두고 볼 수 없는 소설이다. 사건의 전말이 먼저 드러났다고 해서 사랑의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사건보다 나중에 완성된 사랑, 사건을 이겨낸 사랑이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용감한 소녀 바이올렛 골드를 따라 이 모든 여정을 마친 독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택의 비밀 중심부에 도착한 바이올렛은 일평생 남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온 엘리자베스 아가씨와 최선의 결론을 만든다. 소설에서라도,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누릴 필요가 있다.
슬픔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한 가닥의 꿈이라도 황홀히 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