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가격 때문에 자주 즐기진 못하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바로 ‘방탈출’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도입부가 방탈출 공간을 연상시키다 보니 시작부터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알고 보니 모험과 두뇌 게임을 즐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방탈출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도입부를 치밀하게 쓰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어떤 곳에 갇힌 몸이 된 다음에 수수께끼를 풀어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댔나. 게다가 그런 힘든 일을 겪으려고 돈까지 낸다니 요즘 사람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 문장이 나오기 전까지 화자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문장만으로 “아, 이 사람은 나이대가 좀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추론을 한 채 읽으면서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훨씬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편하게 간다면 그냥 이 사람의 나이는 어떻고 외모는 어떻고 하며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정보를 이런 ‘화자의 생각’을 통해 드러내신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도입부를 벗어나 소설 전반이 결국 다루는 이야기에 대해 얘기하자면, 엽편에 해당되는 소설인 만큼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은데도 이 작품만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에 정말 많지만 ‘물건 속에 담긴 기억들’, ‘내가 만나는 나’처럼 구체적인 설정을 통해 작가님만의 이야기로 만드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아래의 대사입니다.
“갈수록 자주 오네. 슬슬 끝이 보이는가.”
아름다운 감성이 담긴 표현도 여럿 있는 작품이지만, 저는 이 대사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수많은 기억은 점점 사라져 가지만, 그만큼 쌓여가는 그리움 때문에 자주 그 기억을 찾으러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이 대사를 보면 괜히 가슴 한편이 찡해집니다.
짧은 분량 안에 작가님만의 독특하고 예쁜 감성을 꾹꾹 눌러 담아주신 것 같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