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세계관과 견뎌야 하는 이야기 의뢰(비평)

대상작품: 동굴 속의 닻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보네토, 17년 7월, 조회 101

이번에도 BornWriter(born이 bone이 아닌데 왜 뼈님이라 칭하는가? 의 의문에 봉착했다만, 탄생님이라 하랴 남님이라 하랴? 앞은 길고 뒤는 너무 뜻이 많은 단어라 곤란하므로, 여전히 뼈님이다. 뼛속까지 글쟁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본다) 님의 글을 털게 되었다.

 

이번 글은 [동굴 속의 닻]이다. 전작인 [은사와 은사](그리고 이쪽은 그 글에 대한 내 리뷰글이며, 클릭하시면 새 창으로 뜬다)에 이어, 어딜 봐도 뼈님의 아바타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글쟁이는 여전히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스승의 날 특집 같지만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 전 글과, 제목만 보았을 때 잊혀진 해적유령선이 동굴 속에서 발견될 것 같은 이 글은 같이 읽어두면 좋지만, 따로 읽어도 별 무리 없다는 말씀을 미리 드린다.

그나저나, 위에서 내가, 제목만 보았을 때 잊혀진 해적유령선이 동굴 속에서 발견될 것 같다고 했나? 그럼 역시 인디애나 존스다. 고고학! 교수님! 신비! 미스테리!

 

미리 말해두지만, 반만 맞았다.

 

 

 

======이하, 스포일러를 신경쓰시는 분이라면, 내 리뷰는 안 읽으시는 게 낫다.

그리고- 전작을 읽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글이라 썼음에도, 이 리뷰는 전작과 본작을 오가기 때문에 리뷰를 보시려면 둘 다 보고 오시는 편이 좋다.

 

 

 

1. 재미있어 보이는 세계관

시작부터 대형 스포를 터뜨려 볼까? (다만 이것은 오로지 나의 이해이기 때문에, 뼈님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

세계는 유일하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그렇다. 하지만 세계 위의 새겨지는 시간들은 지층처럼 레이어를 이루게 된다. 이것은 같은 공간이기도, 다른 공간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 차이를 인식할 수 없다.

몇몇 공간에서 시간의 레이어가 겹쳐지는 경우가 발견되는데, 이런 겹차원의 틈새를 비집고 손님이 들어온다. 이 손님이 얌전한 분이라면 상관이 없겠는데, 이분은 명백히 불청객이라 사냥꾼이 신나게 이분들을 썰고 다닌다. – [은사와 은사]

 

차원의 틈새로 조금씩 조금씩 차원 바깥의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이세계를 보게 된 사람은, 언젠가는 완전히 차원의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안전 장벽 안과 안전 장벽 바깥의 일이다. 완전히 밀려나면 장벽 밖의 사람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정상적, 또는 일반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귀신을 조금씩 보면서 영안이 열리고 나면, 다시는 영안이 열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일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이렇게 차원의 틈새를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레이어 또는 차원을 한 번에 못 박는 조치가 필요하다. 닻을 내려 배를 고정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모양인지, 조치 관련자들이 이것을 앵커(닻)이라 불렀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이세계의 섬을 만들었다. 관문이기 때문에 이름이 게이트 아일랜드다. 그리고 아무나 접근할 수 없도록 동굴 속에 섬으로의 통로를 이어 놓았다. – [동굴 속의 닻]

 

재미있어 보이는 세계관 아닌가? 이야기도 많이 나올 법하다. 손님 이야기(틈새가 있으면 있는 거지 굳이 왜 기어나오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를 할 수도 있겠고, 사냥꾼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섬을 만든 마법사 가문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고, 이렇게 애꿎게 끌려들어간 일반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어려울 이야기도 아니다. 신난다. 읽는 나는 떡만 주워먹으면 되는 거다. 전번 떡은 맛있게 먹으며 속 앙금으로 진입했더니 앙금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고 쪼오까 수상한 거였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떡 아니었던가?

 

2. 에미야, 떡이 퍽퍽하다

이번 떡은 너무 컸다. 시도도 괜찮고, 화자가 사실 둘이었다는 반전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에필로그격인 시부야 어셈블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새 등장인물도 너 이야기 좀 나오겠다? 싶고, 이름만 등장하다시피 하는 다른 인물들도 괜찮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앞부분을 견뎌낸다면 말이다.

전작이 다루고 있는 사건은, 200 페이지 남짓한 분량이 다루기에 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볼륨을 조금 늘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본작이 다루고 있는 사건이 33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어울릴 사건인가? 나는 글쎄-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이 정도의 볼륨이 다루기엔 사건이 맹렬하지도, 다양하지도 않기 때문에 읽다보면 늘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살인사건이 등장했는데도 그닥 긴장감으로 와닿지 않는다. 게다가, (3화쯤 떠올린 생각이다) 거 글쟁이라 그런가 자식 되게 말 많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묘사가 휘황하다. 쓰러질 거면 그냥 쓰러지고, 아플 거면 그냥 아프고, 죽을 것 같으면 그냥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가 이렇게 사고가 복잡한 것인가.

내 위에서, 짐승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아래턱이 세 갈래로 쪼개지며 불쾌한 점액을 쏟아내었다. 날카롭게 돋아난 이빨과 어두컴컴한 목구멍이 곧 벌어질 사태를 증거했다. 분명하게 몰려오는 죽음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 기괴한 아가리가 내 머리를 단번에 뜯어가 주기를. 그럼으로써 최대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기를 나는 속으로 빌었다. 물론 이번에도 기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지만.

다른 분 글에 첨삭하는 건 사실, 내가 뭐 그렇게 뛰어난 글쟁이인 것도 스승인 것도 아닌데 무슨 무례인가? 싶어 하지 않겠다. 어차피 문장은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내가 감히 손을 대어 고친 문장은 내 취향일 뿐이지 다수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지적은 할 수 있을 거다.

너무 힘을 준 문장은 또는 너무 멋을 부렸다 싶은 느낌의 문장은, 감상에 분명 방해를 준다. 위에 예를 든 문단 외에도 몇몇 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형식의 문장은, 화자의 특성을 반영하느라 뼈님이 이렇게 작성하셨을 수도 있겠다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뭐 이렇게 군더더기가 많아? 죽음에 앞선 긴장감이 막 들려했다가 오그라들며 승천하는데? 이런 감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크고 맛있는 떡을 대접하는 것도 좋지만, 떡이 너무 크다. 볼륨을 좀 줄이면서 전반적으로 잔묘사를 쳐내시는 게 더 긴박하게 느껴질 것 같다.

 

3. 이왕 손보실 거라면 여기도!

반전이긴 하지만 어차피 중반 쯤 되면 자연스럽게 유추 가능한 일이니, 두 화자를 명백히 구분해 주셨으면 싶다. 과거형인 해XXX쪽은 고딕체, 현재형인 베XX쪽은 명조체 이렇게 수정해보시면 어떨까? 더 깔끔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그리고 자꾸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가는 헉슬리. 그녀의 묘사를 좀더 납득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왜 난 그녀가 나올 때마다 괴로운 것인가. 그녀만 나오면 짧고 긴박하고 정신 없이 휘리릭 넘어가기만 한 후 끝!이어서 납득이 안 된다.

 

…그리고, 이왕 헉슬리 이야기한 김에, 진지하게. 확실하게.

이 연애 반대다! 반대라고! 반대야! 언니가 (사이가 나쁜 것 같긴 하지만, 이건 헉슬리 개인의 불만인 것 같고 히이라기 쪽은 귀여운 동생의 앙탈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수순 같단 말이다? 그럼 이건 명백히, 비난이나 진심이길 바라는 양식의 질문은 아닐 것이다) 스물아홉짜리를 만나거나 구해주거나 등등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열여섯 짜리 동생에게, 그 스물아홉짜리가 남자친구냐고 묻는다는 장면은 크리피하다 못해 내 상식 아득히 저편, 범죄의 일이다. 범죄다. 범죄라고.

여중생에게 근 서른 짜리가 아무리 잘생겼건 돈이 많건 키가 크건 성격이 좋건 어쨌건 서른 짜리는 아저씨다. 아저씨야. 아저씨라고. 오빠 아니야. 예비역이 오빠라고 불러 해봤자 삼촌이나 아저씨다. 연애 대상으로 넣으려는 시도 제발 아웃. 놀리거나 비웃는 장면으로 넣는다고 해도 소름 돋을 판에 이 무슨. 19세여도 어 쫌… 싶을 마당에 16, 아무리 장벽 밖 사냥꾼이고 실제로는 시간이 꼬여서 한 26쯤 된 거라고 주장할 거라 해도 노-!!!!! 나의 모럴은 너희를 용납할 수 없다! (딸 있는 가장의 분노)

 

 

 

쪼아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전번보다 더 가감 없이 쪼아보았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불만과 막말을 순화해서 사용하는 훈련을 10년 넘게 해 왔다. 아주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그래도 험한 말을 쓸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불가능하다. 사람이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는 문서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다니… (부들)

 

어쨌든, 이 리뷰가 쥐알만큼이나마 도움이 되어 이 맛깔나는 세계관을 더 재미있게 받아먹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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