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입니당.>
이 작품을 중간까지 읽었을 때, 나는 확신했다.
‘분명 이 작품의 지은이는 도서관 책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에게 마음속 깊이 화가 나 있다’라고.
그리고 그것은 지은이가 ‘책’자체를 아끼기 때문에 난 화는 아니다. 그 책을 읽으려는 자신의 행위가 방해를 받은 경험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깊은 분노이다.
(아, 물론 제 추측입니당)
나도 그런 경우 많다. 빌린 책에 밑줄이 쳐 있거나, 낙서가 되어 있다.
코딱지를 붙여놓은 경우도 있다.
읽을 맛이 싹 사라진다. 중간까지 읽고 그냥 반납해버린다. 그렇게 중간까지만 읽은 책을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작품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이미 씌워졌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그 작품은 영원히 사라진다. 안 아까울 수 없다. 아깝고, 아깝다.
내 시간과 노력과 수고는 또 어떤가.
도서관에서 이거빌릴까 저거빌릴까 고민하고, 빌린 책 읽을 기대에 부풀고, 밑줄과 낙서로 짜증이 나면서도 중간쯤까지 억지로 읽어나간다. 그러다가 도저히 스트레스 받아 더 못 읽고 내려놓는다.
낭비한 내 시간과 내 노력과 내 돈.(돈이라 함은 뭐 도서관까지 간 교통비, 더워서 사먹은 아스크림값, 그 시간에 다른 할일을 못함으로써 입은 손해)
그렇다면 증오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짜증과 분노, 적의가 용솟음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 시간과 노력과 수고를 강도질해갔는데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분명 이 작품의 작가도 그런 일로 빡쳐본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증오가 범인(즉 노인)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범인의 입에서는 재떨이 냄새와 인스턴트 커피의 쩐내가 난다. 외적인 늙음과 부조화를 이루는 생생한 눈알은 또 얼마나 불쾌한가.
‘입술을 옹졸하게 오므렸다’, ‘거북목’등에서도 작가는 범인의 외면과 내면의 추함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즉 그것은 ‘범인 자체’의 추함이라기보다는 범인의 행동, 즉 ‘범죄(도서관 책 훼손하는 건 범죄 맞다)’에 대한 작가의 증오심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노인이 다리를 질질 저는 인물로 설정된 것도 마찬가지다. 공공재(도서관 책. 즉 내가 읽어야 할 책)를 훼손하는 행위를 비정상적인 행위로 여기는 작가의 심리가, 질질 저는 한쪽 다리를 통해 표현된 것은 아닐까.(물론 다리 질질 끄는 바람에 걷는 게 느려서 화자가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노인’으로 설정된 것은 또 어떤가.
아줌마도, 청소년도, 중년아저씨도 아니라 ‘노인’이다. 노인은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아서 도서관 책을 하나하나 다 빌리고, 또 하나하나 밑줄까지 친다.
반면 작품의 화자는 시간이 없다. 글도 쓰고 싶고, 토익시험도 치러야 하고, 재취업도 해야 한다.
노인은 남는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 화자인 취업준비생은 극단적으로 시간이 적은 사람이다.
화자가 범인을 더 미워할 충분한 이유이다.(물론 이성적인 이유는 아니지만요)
화자의 증오는 다름 문장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존재 자체가 악취인 듯한 노인네….’
아~~!! 이렇게 시원하고 심한 증오를 표현한 문장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
기분 좋아지는 문장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 화자는 취업준비생이다. 몇 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직시험 및 토익준비를 할 뿐 아니라, 작가지망생이기까지 하다. 불투명한 미래는 그것만으로 상당한 스트레스이다. 문학작품 코너에 찾아간 것에는 그런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보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결정적 방해(밑줄)에 직면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의 시너지 효과다. 1+1=2가 아니라 1+1=10쯤은 될 것이다.
그래서 중반부까지 읽을 때는 분명 이렇게 응축된 스트레스가 어떤 배출구를 향해 폭발하고, 독자건 작가건 강렬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조금은(사실은 상당히) 잔혹한 결말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작가는 가해자를 스르륵 용서해버린다.
결말까지 읽고 난 감상은, ‘이 작가는 꼰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에게 해악이 꼭 다른이에게까지 해악이 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모든 행위는 상대적임을 아는 것이다.
사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 본인한테 아무리 나쁜놈, 나쁜짓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한테 나쁜 놈은 절대적으로 나쁜 놈이어야 한다. 그런 게 바로 꼰대다.(즉, 나는 꼰대다ㅠㅠ)
노인의 밑줄은, 후반부의 여대생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방해가 되었으면 그렇게 몰입해 읽을 수 없었을 테니, 방해가 안 된 건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도움이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당황스러웠다.
내가(즉, 이 리뷰를 쓰는 HY) 절대악이라고 생각한 것을, 작품 속에서 한창 내가 감정이입하던 화자가 스르륵 용서해버린다. 직접적인 용서는 아니지만 여대생의 흐느낌을 통해 용서의 뉘앙스를 충분히 풍기고 있다. 즉, 작품 속의 화자를 나(독자)의 대리인처럼 여겼는데, 나의 대리인이 내 의사에 반해서 범인을 용서한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느꼈다.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머리로는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다. 가슴으로는 납득하지 못한다. 작가의 묘사력이 출중해서 짧은 글인데도 엄청 빠져들어 읽었던 만큼 결말이 더 당황스럽다.
범인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고, 나쁜 행위는 용서받았다.
여태까지 그런 식의 결말을 별로 접해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소설(이야기)의 도식과는 다른 글이라 나는 당황하고 낯설어한다.
그래서 뭐라고 이 리뷰를 끝내야 할 지 모르겠다.(이러려면 뭐하러 리뷰썼냐)
어쨌든, 한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리뷰를 일단락해야겠다.
근데 이 작품,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중단편소설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부분, 또는 독백체랄까 혼자 머릿속의 생각을 주구장창 풀어놓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줄거리 요약하듯 쓴 소설도 에러다.
소설속 인물은 움직이고(행동), 말을 해야(대사) 재밌는 거니까.
하지만 단순히 행동과 대사만 가득한 소설 역시 소설로써의 묘미가 떨어진다. 하드보일드함이 지나쳐 행동과 대사 뿐이라면 너무 건조하고 앙상한 글이 된다. 그런 글을 읽느니 만화책과 영화를 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무척 능숙하다. 군더더기 없이 적당히 촉촉하고 적당히 탱탱하다. 생각은 작은따옴표로 간결하게 처리해서 문장속에 매몰되지 않았다. 행동과 대사 위주의 흐름이라서 속도감과 현장감도 있었다. 글의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다. 소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많이 써본 자의 솜씨라 단언할 수 있겠다.
(→다음 부분은 원래 리뷰에서 좀 더 추가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단점이 분명이 있다.
작가는 ‘살서마’에 대한 증오를 작품에 투영했고, 작품 속 화자는 살서마를 잡기 위한 트릭을 설치, 자신의 자원(취업준비생에게 자원은 시간이겠죠)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살서마 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살서마와의 조우는 결국 특별한 결론 없이 흐지부지. 게다가 살서마를 용서하는 엔딩.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런 결말, 이런 끝맺음일 거면 뭐하러 초중반에 살서마에 대한 증오를 그리도 리얼하게 표현했으며, 살서마를 잡기위한 시간과 노력은 도무지 무엇이었단 말인가. 초중반은 무게도 있고 탄탄하고 좋다. 하지만 결말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작품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화자의 노력과 행동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다.
작가는 작품 소개에 이렇게 말했다.
[(전략)..범인을 찾기 위한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여기서 ‘쓸데없는’이라는 건, 결론적으로 화자가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한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화자의 노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보답(마이너스 보답이라도)을 받지 못하는 허무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독자가 있을까.
(이 작품은 문장이 참 좋다. 분위기도 맘에 든다. 막 읽었을 때는 리뷰 쓰기 충분한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일단 리뷰 다 쓰고 핫케잌 구워먹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화가 난 것도 사실이다. 너무 조급한 결말은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썼던 리뷰에 이렇게 조금 더 추가를 한다.)
뭔가 결론없고 애매한 리뷰가 되었다. 손 가는 대로, 느낌가는 대로 그냥 쓴 리뷰이기 때문입니다.(죄송합니다ㅠㅠ)
제 리뷰는 별로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다른 사람들도 꼭 한번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작가님 스스로가 이 글의 결말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들어보고 싶다.
작가한테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글은,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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