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톨킨으로 판타지에 입문했다. 톨킨과 루이스와 귄 선생이 내 환상문학적 토대를 다져주셨다. 해리포터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영미권의 환상문학 속에서 자랐다. 한국의 판타지를 접한 것은 중학교에서부터였다. 허구한 날 톨킨이나 붙잡고 있는 내게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 놈 하나가 ‘드래곤 라자’를 권하였다. 그것이 타자와 내 첫 만남이었다.
무례하게도 (그리도 당연하게도) 나는 드래곤 라자를 썩 만족스럽게 읽지는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톨킨만 읽다 보니 드래곤 라자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그다음으로 추천받은 달빛조각사는 최악이었다. 한국 판타지가 영미권의 판타지(라고 치기에 톨킨의 위치는 훨씬 더 높지만)보다 수준이 낮다니!!! 하는 생각이랄까. 이런 생각이 나를 글 쓰게 만들었다. 어쩐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내가 글을 쓰면 한국의 그 누구보다 글을 잘 쓸 거 같았다. 그렇게 한국 판타지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내가 가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추억에 공감할 수 없다. 내가 부릿찌 평균 나이보다 한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릴 뿐만 아니라, 내가 타자의 글을 접한 시기에는 이미 눈마새 피마새까지 (그러니까 타자의 왠만한 장편소설은) 다 나온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톨킨은 살면서 두 작품만을 출판했고, 그의 사후에 셋째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편집하고 살을 붙여 여러 작품을 출간하였다. 실마릴리온이나 후린의 아이들, 중간계 역사서 등이 이러한 것이다.
그러니 타자를 기다리는 독자들이라면 감나무에 물을 줄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떡두꺼비같은 자식이 생겨, 그 자식이 아비의 유고 전부를 편집하고 출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을 뿐만 아니라 그 편이 더 빠를 수도 있다(고 주장 해본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훈’은 단권으로만 따지면 타자보다 적게 썼지만, 꾸준히 써주시는 고로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읽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하고 있다. 만약 김훈 작가가 노령의 나이를 빌미로 절필을 선언한다면 아마도 가슴이 찢어지겠지. 아마 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아픔도 이런 게 아닐까. 그렇지만 타자는 딱히 절필 선언 같은 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일종의 희망고문이랄 수도 있겠다.
+ 타자님 원고는 쓰신다고 했던 거같은데, 장편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역시 IP 때문인가…. 역시 돈은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