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건 우린 옥희의 엉덩이 춤을 봅시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랑손님과 나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7월, 조회 170

 

1.

우리 모연 군의 용무가 다망해 언제까지고 붙들어두기 딱하오니 선생님께서 끼니 때가 지나도 귀가치 않으시면 밖에서 식사를 하고 오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손님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왜 이렇게 바뀌었으며 옥희는 어디가고 낯선 이름인 ‘모연’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법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옥희어머니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기에 밥도 안챙겨주고 밖에서 먹고오는 걸로 간주를 한다는 걸까요. 게다가 우리 옥희가 아니고 우리 모연 군이라니.

 

얼마 전 인터뷰에 주인공이었던 이나경 작가님에 의해 다시 태어난 <사랑손님과 나>에 대해 다른 리뷰에서 짧게 감상을 밝혔다가 무려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나’에 대해 다시 적어보고 싶어 리뷰를 시작합니다.

 

2.

원작의 설정을 대부분 가져 오면서 가상의 인물인 ‘모연군’을 집어 넣었습니다. 원작이 있는 상태에서 가상의 인물을 넣으려니 우리 모연군의 활동 범위가 넓지는 않습니다. 마치 벽에 빼곡한 매형의 물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건이 가득 찬 상자를 정리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 하나 꺼내며 추억을 되새기는 사이 추억이 흐려졌거나,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몇가지를 버리고 난 후 다시 하나씩 집어 넣으면 분명 이 상자에서 다 꺼낸건데! 게다가 몇개는 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담아지지 않아서 난감했던 일이 있으시겠죠.

모연군의 행동 반경이 이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있는 원작에서 모연은 몸을 아무리 뒤틀어도 원작의 틀을 넘어 설수는 없었습니다. 방을 늘릴 수는 없으니 선생님과 방을 반으로 나눠쓰고요. 옥희와의 관계나 옥희 어머니인 누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묘사가 되지 않습니다.

대신 제목에서처럼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내 그저 염탐질이나 할 요량으로 주인 없는 방에 들어온 건 아니고 따로 목적이 있다.

 

모연군은 중학생인데다 대담하다거나 용기있다거나 대의를 위한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염탐질을 하러 들어간 건 아닐겁니다. 그 모종의 이유는 곧 밝혀지겠지만 저는 이 대목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전개라는 생각과 동시에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알림장에 “뫄뫄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다니겠습니다.”라고 불러주는 대로 써달라고 떼쓰던 사촌동생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염탐질을 하려고 들어간 건 아닐텐데, 본의 아니게 펼쳐본 수첩에서 ‘일주일 뒤’ 라고 적인 어떤 거사의 날을 보게 되어버렸고 그것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대망의 그 날 ‘선생도 누님도 꼬맹이도 무사태평하게 각자 자리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 홀가분하게 등교할 수 있겠다.’ 고 누님의 자리와 옥희의 자리를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만 모연군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거사라는 것이 그 거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일제의 앞잡이라 불리던 석정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며 동리가 술렁이며 ‘각시탈’ 이라는 독립운동가의 소행이라고 금번의 호기를 놓치면 안된다고 말이 돌 때, 주인공은 가슴이 벅찼다가 금세 가라앉고 맙니다.

모연군은 각시탈이 선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연군은 애국도 좋지만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절의 무단통치가 조선인에게 기대한 성격의 전형이기 때문이죠.

뒤에 모연이 선생을 고자질하는 장면도 이런 성격적인 복선에 의해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그 나이 또래다운 치기어린 성격이라던지 무모함 이라던지 욱하는 혈기왕성함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내 수명을 쪼개어 우리 식구들에게 나눠 줄 수 있다면’ 같은 기도를 할 정도이니 이건 철이 일찍 들었다고 해야 할런지, 옥희를 지나치게 아끼는 마음에 그 길로 순사에게 달려간 걸 보면 비약이 심한 철 없는 아이라고 해야할런지. 순사 앞에서 울음이 터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걸 보면 어김없이 그 또래의 남학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모연’군’이 아니라 모연’양’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머니도 못들어 가는 방이니 아예 이야기가 성립이 안됐을 것 같긴 하지만 옥희가 사라졌더라도 앞뒤 잴 것 없이 순사에게 뛰어갈까 라는 질문에도 역시 ‘아니다’인 걸 보니 모연 군은 그저 1930년대의 식민통치 하에 살았던 철이 들랑 말랑 했던 아직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중학생 쯤 인것이 가장 어울리는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3.

 

개인적으로 작품 속 4와 5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옥희와 선생님과의 관계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건 1인칭 시점을 지켜보는 독자로서 다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궁금증이기도 한데 대체 옥희는 왜 토라졌으며 선생은 정말 그런 이유로 예배당까지 간걸까요?

우리는 이 시대와 선생이란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모연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마치 처음부터 각시탈을 선생이라 의심한 모연군의 생각에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요.

원작에서 옥희는 중계자의 역할을 하며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사이를 오갑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쑥스러워서 짐짓 화를 내는 ‘척’을 하는 것을 잡아내지 못하고 어머니가 화를 낸다고 그것이 이상하다고만 생각을 하지요. 여기서 독자는 어머니의 감정을 읽을 수 있지만 6살인 옥희는 그런 감정을 다 깨닫기에는 너무 순수하기만 합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응, 그래. 옥희는 모르겠지. 그런게 있단다.” 하면서 옥희보다 한 발 더 읽을 수 있는 우월함을 뽐낼 수 있었다면 모연군의 시선에서는 그런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모연의 추리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어서 4. 편이 답답했습니다.

5.편은 원작에 갇힌 모연이 유일하게 자신의 세계로 만든 포크댄스 파트너 태화가 등장합니다. 고백도 그답게 조용하고 담담하게 이루어져서 간질간질하게 설레는 감정도 한박자 늦게 느꼈습니다. 좀 뜬금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말에 포크댄스에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혹은 모연에게 생동감을 주려고 넣은 편이 아닌가 싶지만 그로 인해 당사자와의 담판이 필요하단 것도 깨달았으니 전개에는 꼭 필요했던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8편에서도 천국와 지옥을 오가는 와중에 포크댄스를 춰서 그 뜬금없음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퍽 귀여운 광경이었습니다.

 

4.

<다수파>에서도 느꼈지만 사회적 이슈가 되고 파장이 컸던 사건들을 이렇게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은은하게 깔려 있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라던지 선생이 사랑손님으로 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친일파에 대한 재산 문제라던지. 호수 가운데로 던져 넣으면 큰 물결이 일어날 일을 개인으로 내면으로 끌고 들어오는 전개가 흥미롭습니다. 흥미롭다는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어서 한참을 말을 골랐지만 적절하게 떠오르지 않네요. 후에 생각나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런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나면 속이 텅 빈 것 처럼 공허해지고 잠시간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라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답이 그게 맞아? 다시 생각해봐. 하고 친절하게 기다려 주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이 작품 속 선생님도 현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는 ‘유령’일 뿐이여서, 엉덩이를 적당히 붙이고 있으면 월급이 나온다는 미래사에 취직을 권유하죠. 정말로 괜찮은 조건이라면서.

그렇지만 미래사에 다니는 형님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유령’은 유람객일 뿐이며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미래사에 다니고 있으면 역사의 볼모라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무서운 얘기를요. 그들은 월급이 괜찮고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늘 ‘들개와 맞닥뜨렸다든가, 유령을 보았다든가, 괴한에게 쫓겼다든가.’ 하는 삶을 살고 있겠죠.

 

5.

모연군이 미래사에 취직을 할까요. 잘 모르겠네요. 정말로요.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참이나 남은 얘기니 석양이 진 마당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포크댄스를 추는 옥희를 감상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거대한 원의 부속으로서 우리의 춤은 오래토록 계속 될’테니까요. 미래에서 누가 오더라도 우린 현재를 사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니까요.

 

덧) 선생님이 미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버려서 모연군은 억지로라도 미래사에 취업해야 할 수도 있겠네요….

선생님이 그럴 수 있나요. 미래에서 온 것치고 너무 자각이 없으신거 아니에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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