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나 쥐나 다를 바가 없는 듯” 단상

대상작품: 1984년 생 권숙자淑子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일월명, 23년 11월, 조회 63

암울하고 처연한 분위기의 신체강탈자 호러입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밀도 높은 문장은 권숙자씨의 지난한 인생과 그의 평생에 걸쳐 있는 고통을 함축적으로 묘사합니다. 고통의 수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높아졌던 열 번의 순간마다, 권숙자씨는 고난을 극복하는 대신 스스로를 쥐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동치하며 그 ‘쥐’를 밟아 죽이기를 선택합니다. 권숙자씨가 된 쥐가 쥐가 된 권숙자씨를 밟아 죽이는 모습은 결국 그가 자신을 이루는 무언가를 더는 유지하지 못해 억압하고 도려내는 자해적 상상(물론 호러의 도식에 따라 상상이 아닐 수도 있고요.)이자 스스로 삶에서 기인했을 지독한 자기혐오의 발현입니다. 그게 감정이 되었든, 희망이 되었든 간에요.

쥐를 죽이는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고어한 요소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각을 일깨웁니다. 이는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가 권숙자씨를 향한 연민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장르적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안타까움과 역겨움이라는 양가 감정 덕분에 이 소설은 호러의 위치에 안착합니다. 이 두 감상은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단순히 사람으로 둔갑한 쥐가 원본을 죽이는 이야기라면 기존의 ‘손톱 먹은 쥐’ 설화의 클리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테며, 자칫 끔찍한 생각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제거된 자학심은 온전한 이야기로 서기엔 힘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 둘을 적절히 조율하는 일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도 좀 더 잔인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또 좀 더 사적인 감상을 붙이자면, 이 소설을 단편으로도 보고 싶기도 합니다. 권숙자씨가 쥐를 열 번 밟아 죽인 순간들 중 몇 몇 장면이 구체화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엽편으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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