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런저런 일들을 지나 벌써 2023년도 끝자락이네요. 그간 여러가지로 마음이 팍팍해질 일이 잦아 가슴 속 촛불을 다시 찾고자 제 보물상자를 다시금 열어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성질이 급한 구석이 없잖아 있어 이야기라면 앉은 자리에서 주어진 것을 전부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들로 힘에 겨우니 그조차도 마땅찮아 이야기를 잘 소화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나 짜증이 생기곤 했답니다. 그 와중에도 찬찬히 한편 한편 읽고 감상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작가님의 이야기들은 제게 가벼운 책임감(스스로 매긴 감상문을 쓰자! 라는 책임감이랍니다ㅎㅎ)과 함께 다정한 여유를 주는 보물이랍니다. 이런 보물을 만날 수 있는 저는 분명 행운아이겠지요.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 문장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지만 문득 이전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네요. 이전에 읽었던 세 작품들과 이 작품은 큰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거든요. 이미 큰 상처를 겪은 세계와 그 이후의 긴 미래를 이야기하는 ‘방주를 향해서’, 과거로 돌아간 시간 여행 속에서 새로이 일궈낸 현재를 이야기하는 ‘시간 여행자의 고해’, 아주 짧은 찰나가 지켜낸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 ’75분의 1′. 그리고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결국 그 너머의 포기하지 않는 미래를 이야기한 ‘태엽의 끝’까지. 제가 멋대로 시간 시리즈라고 이름붙여도 되는 걸까요? 하지만 모두 시간과 그 시간이 지니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 모두가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작가님의 따뜻한 시각까지요.
언젠가부터 장르소설에서 흔히 쓰이기 시작한 ‘회귀’라는 소재는 상당히 아프고 슬픈 울림을 줍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회귀란 필연적인 실패를 동반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더군요. 이미 실패한 것을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입하기는 쉽고 감정소모는 적어서 독자와 작가에게 모두 편한 소재라는 이야기라고도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진짜로 겪는다고 하면 한 번도 힘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은 대체로 그 이상의 횟수를 겪게 되니 엄청나게 괴로울텐데도 말이에요. 주인공에겐 가장 힘든 길이 작가와 독자에겐 쉬운 길이라니 꽤나 아이러니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 대신 괴로운 가정을 걸어주는 것이 제법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그 괴로움의 순간에서조차 그 너머의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네요. 왜 나만? 이라는 주박에 빠지지 않고 내가 아닌 누군가, 나의 소중한 사람이 걸을 지옥을 생각했군요. 그것이 아마 주인공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겠지요. 비단 회귀나 루프가 아니더라도 일상은 비슷하게 반복되고, 산다는 것은 때때로 지옥의 동의어가 됩니다. 그런 지옥 속에서 오롯히 타인을 걱정할 때, 그를 사랑할 때, 그래서 어떠한 행동을 결심할 때야말로 지옥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를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의는 돌고 도는 것이어서, 언젠가 그렇게 연결된 모든 통로를 타고 서로에게 돌아오기도 하니까요.
주인공은 스스로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했습니다. 그건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넘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오롯히 주인공 혼자만의 힘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걸까요? 어쩌면 그보다 먼저 도착한 꿈꾸는 입자가, 주인공을 사랑하는 입자가 그 폐부를 빵빵히 부풀려 입에 쇠맛을 물려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옥에 출구가 있을 거라는 꿈을 그가 탈출하기를 바라는 사랑을 먼저 전해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누구 한 사람을 애틋히 사랑하고, 또 후회하고,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지옥에 혼자 남아 부스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런 다정한 사람의 지옥을 먼저 걱정했던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하는 상상이요.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반복되는 것이어서, 이 우주는 태엽의 미로여서, 모든 것이 현재와 과거와 미래 동시에 발생하여 주인공은 이미 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구했고, 이번엔 그 사람이 주인공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엽은 누군가가 먼저 감아두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ㅎㅎ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그저 어느 구절이든 제게 깊숙한 울림을 주었고 행복하게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역시나 마지막 부분의 독백이지만요. 작가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대화이든 묘사이든 전부 좋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독백이 가장 깊게 남은 것 같아요. 이건 독백이지만 동시에 네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이 이야기 전체가 결국 네게 건네는 말인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독자인 저는 그 순간 주인공의 ‘너’가 되어서 나를 위해 이 너머로 오겠다는 주인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겐 아주 큰 위로였답니다.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저는 정말로 ‘너’이고, 이 루프는 사실 지옥이 아닌 시험이어서 저는 무사히 구해져 사랑의 입자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를 다시 마주한 것일지. 그러니 이번에도 덕분에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가슴속의 이 촛불을 안고 오늘도 살아가보려 합니다. 태엽의 끝에서요.
다시금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건강히 건필하시길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