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오크변호사 첫 회차인 독수의 과실 1편부터 마지막 회차인 깨진유리창 3편까지 다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형사재판과 변호사
3. 제국의 우생학
4.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안녕하세요. 저는 브릿G의 8월~10월 분기 리뷰 이벤트에서 소개한 유권조 작가님의 장편소설 <오크변호사>를 읽고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유권조 작가님은 <진정한 의미의~> 시리즈를 포함하여 다양한 장편, 중단편 장르 소설들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유권조 작가님은 황금도롱뇽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창작을 전공하셨기도 하고요.1
변호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은 드물기도 하고, 관심이 생겨서 <오크변호사>를 정주행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소개란에 따르면 <오크변호사>는 ‘오크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세계. 국선전담 변호사 다밀렉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혈 오크 변호사의 법정물 소설인줄 알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첫화부터 본편마지막화, 외전 3편까지 모두 읽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님이 추구하는 문학적인 메세지의 핵심은 단순한 재미와 박진감 넘치는 법정드라마가 아니라 차별받는 하위종족이 독립운동과 각종 투쟁을 통해 결국 모든 종족의 차별을 철폐하여 인간과 엘프에게만 허락되었던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유리천장을 박살내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 외전 3편을 위해서 본편 전체가 빌드업을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은 문학관을 최대한 살려서(?) 리뷰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형사재판과 변호사
<오크변호사>의 주인공 다밀렉은 국선전담 변호사입니다. 그는 제국 동부 9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입니다. 남성이고 오크라서 큰 덩치와 붉은색 피부, 거대한 어금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남성 경찰관의 옆에 서면 인간들이 소년으로 보일 정도의 덩치를 가졌습니다. 오크 변호사를 대하는 사람들(엘프, 고블린, 오우거, 인간, 가고일 등)의 태도를 보면 오크가 변호사로 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희귀하고 기적같은 일입니다.
마치, 흑인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미국 남부에서 백악관에서 공연하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남부 백인들에게 심한 반감과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처럼요. 대체로 저 당시에 미국 남부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목화밭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백인 상류층과 중산층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했던 시절입니다. 흑인이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흑인이 멋지고 세련된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지요.
<오크변호사>에서 등장하는 종족들은 인간과 엘프를 제외하면 전부 ‘하위종족’으로 지칭됩니다. 가고일, 고블린, 오우거, 오크, 인간, 엘프 등 다양한 종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판타지 제국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과 배제가 존재합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악당 오크 역으로 등장한 배우들이 모두 흑인인 것처럼, 톨킨 이후에 정립된 판타지 세계관에서 엘프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오크는 더럽고 추악하며 잔인한 존재로 규정됩니다.
이것을 한 번 비틀린 것이 <오크 변호사>라는 것이지요. ‘독수의 과실’ 편 전체에서 오크이자 변호사인 주인공 다밀렉과 그가 맡는 사건들을 보면 더더욱 제국에서 오크, 가고일, 오우거, 고블린 같은 하위 종족은 사회에서도 또한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다밀렉이 하위종족을 위한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 재판받는 하위종족들은 법적으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형사절차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항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일반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특별법과 달리 일반적인 정의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피해자” 또는 “피해자”에 관해서도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은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의 기본정책 등을 정하고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피해를 받은 사람을 구조함으로써 범죄피해자의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범죄피해자 보호법 제1조),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일반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은 “범죄피해자”를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사람 및 그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를 포함한다), 직계친족 및 형제자매, 그리고 범죄피해 방지 및 범죄피해자 구조 활동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범죄피해자 보호법 제3조 제1항, 제2항)
위에 인용문은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과 형사절차에 관한 범죄피해자 보호법입니다. 물론 범죄피해자를 위한 법이기 때문에,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된 고르모프 씨(고블린 남성, 살인사건 피의자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다가 재판 직전에 오크변호사 다밀렉에게 배정됨)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전개되는 내용에 따라 고르모프 씨는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으며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무고한 범죄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고르모프 씨가 죽였다고 알려져 있는 제국 동부 9대학의 대학생은 사실 고르모프 씨가 아니라 국가의 의해 살해당했고, 청소를 하다가 시체를 발견하여 신고한 고르모프 씨가 고블린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고르모프 씨는 범죄피해자인 셈이지요! 따라서 우리나라의 형사법과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르면 고르모프 씨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 규정됩니다.
제가 다른 나라의 법은 잘 모르지만, 일단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범죄피해자 개념에 관하여 아래의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를 해석하기에 앞서서, 그 근거가 된 헌법 제27조 제5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다.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의 취지와 관련하여, 피해자 등에 의한 사인소추를 전면 배제하고 형사소추권을 검사에게 독점시키고 있는 현행 기소 독점주의의 형사소송체계 아래에서, 피해자가 당해 사건의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것 이외에 당해 형사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청문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형사사법의 절차적 적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피고인에 대한 적절한 형벌권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절차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헌재 1997. 2. 20. 선고 96헌마76 결정, 헌법재판소는 1989. 4. 17. 선고 88헌마3 결정).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7조 제5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피해자’는 헌법 제27조 제5항의 취지(즉, 절차적 적정성의 확보, 피해자의 사법상 절차적 기본권의 보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피해자’를 형사실체법상 보호법익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고, 형사실체법상 직접적인 보호법익을 향유하는 주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문제 된 범죄행위로 말미암아 법률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자까지도 포함한다고 하여, ‘피해자’의 개념을 넓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7조 제5항상 재판절차진술권은 형사소송법 제294조의 2 제1항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있으므로(이른바 기본권 형성적 법률유보), 헌법 제27조 제5항의 취지에 따라 헌법 제27조 제5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해자’의 개념이 형사소송법 제294조의 2 제1항의 본문의 ‘피해자’ 개념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헌재 1997. 2. 20. 선고 96헌마76 결정).
오크변호사 다밀렉은 고르모프 씨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고르모프 씨가 구치소에서 목을 메어 자살(정말 자살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하게 됩니다. 그렇게 독수의 과실 편은 종결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주인공인 오크변호사 다밀렉은 포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장인 ‘개념의 뜰’에서 오크변호사 다밀렉은 증거들을 수집하고 서류를 갖추어 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신청을 합니다.
3. 제국의 우생학
오크 변호사 다밀렉은 국선전담 변호사를 관두고 국가배상신청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그 과정도 결코 순탄치가 않습니다. 전술했던데로, 판타지 세계관임에도(아니, 판타지 세계관이기 때문에 더더욱) 다종족으로 이루어진 제국은 하위종족(오크, 오우거, 고블린, 가고일)에게 결코 녹록한 세상이 아닙니다. 엄연한 차별과 소외가 버티고 있지요. 마치,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실존했던 일본제국의 우생학적 사고가 실현된 것처럼 말입니다.
인종의 생물학적 특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타민족과의 결혼 등으로 간단히 융합할 수 없는 것이다 인종 간에 놓인 틈의 깊이는 인종의 성립을 생각하면 바로 할 수 있듯이 한 인종이 그 고유형질을 갖추게 되는 과정을 길고도 멀다.
즉 많은 형질 가운데 그 토지의 풍토기후의 도태를 받고 견뎌낸 것만이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번식했다고 생각하면 […] 이것은 정신형질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정신이 육제에 종속된 이상 여기에도 고유의 기품(氣稟)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일본에게는 일본인의 기품이 있고 그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아리안민족의 기품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古屋芳雄, 『民族問題をめぐりて』, 人文書院, 1935, p.20.
일본국민은 혈연적 서열이 다른 모든 관계를 초월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만민의 관계 또는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견고한 가족제도의 인대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도 국가발전의 근본적 요청이 향토 이에 혈액 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올바른 관계를 내용으로 할 때 성립하는 것임이 명확하다.
古屋芳雄, 「大東亜戦争と人口問題」, 『教學叢書 第十四輯』, 文部省教學局, 1943, pp.92~93.
환경만 개선하면 인간의 향상진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현대 유전학의 진보는 그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충분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문의 향상, 국가융성의 근본책으로 교육, 위생, 종교, 법률 등등 제반의 사회적 환경 개선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국민 중에 소질이 열악한 자의 수를 제한함과 동시에, 우수한 자의 수를 증가시켜 ‘수(数)’와 ‘질(質)’의 조화를 도모함으로써, 국민 소질의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가 완숙하면 격렬한 생존경쟁 때문에 만혼(晩婚)과 자기 향락에 기반을 둔 산아제한 등, 다양한 원인이 착종하여 핵심적인 수와 질의 조화가 무너져, 열악한 자의 수가 증가하고 우수한 자가 도리어 감퇴하는, 소위 역도태(逆淘汰)가 일어나 마치 잡초가 무성해지고 꽃밭이 황폐해지는 것과 같아집니다.
이는 이집트, 인도, 그리스, 로마와 같은 고대문화민족이 멸망의 골짜기에 빠진 이유입니다. 아니, 단지 고대문화민족뿐만이 아닙니다. 현대문화민족도 역시 동일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위생학을 일으켜 중요한 교정 역할을 담당시켜야 합니다. (중략)
일본민족으로서의 확고한 지각은 민족위생학 견지로부터 일본민족의 우월성을 천명하고 이를 발양함과 동시에, 그 단점을 적발하여 전제(剪除)함으로써 비로소 확실히 얻을 수 있습니다.
永井潜, 「民族衛生振興の建議」, 『民族衛生』, Vol.5 No.3, 1936. 09, pp.2~4.
악질(悪質)은 바로 뿌리를 잘라버리면 된다는 사고는, 제군! 유대(猶太)계통의 생각입니다.(박수)
그건 일본정신일 수가 없습니다. (중략) 우리의 혈통은 전 국민이 짙건 옅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물망 하나에 악질이 있다고 하여 그걸 바로 단종해 버리는 것은 우리 국민성의 특징이 아닙니다. (중략) 우리나라는 신국(神国)이고, 도(道)는 신도(神道)이고, 백성은 신의 후손(神裔)이라고 옛사람이 말해왔듯이, 우리와 같은 백성도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자식입니다. 그걸 단종하겠다는 것은 아까 말한 대로 철두철미하게 유대 사상이고, 유대계의 최신 의학으로부터 나온 사고입니다.
帝国議会衆議院, 『第七十五回帝国議会衆議院 衆議院議事速記記録二十五号』, 1940.03.13., pp.583~584.
위의 4개의 인용문들이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일본우생학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제국일본은 나치 독일의 영향을 받아 우수한 민족성의 보존이라는 우생학적 인종주의를 기반한 단종법을 입안합니다. 일본에서 위생학이라는 학문은 국가주의-제국주의 우생학으로 변질됩니다. 판타지 세계관에서도 비슷하지요. 인간과 엘프는 수명이 길고, 우월한 생물이고 그외의 종족은 수명이 짧고 열등한 존재로 구분을 짓습니다.
<오크변호사>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라사레인’이라는 캐릭터가 이를 대변해주는 인물같습니다. 그는 오크 왕국의 왕자이자 제국의 황자입니다. 오크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오크의 특징인 어금니를 뽑고 금발, 흰 피부, 교양있는 상류층처럼 행동합니다. 판타지 세계에선 인간과 엘프의 특징이자 현실에서 백인(White People)의 특징을 몸소 실현합니다. 물론 라사레인 황자는 위선적이고 괴팍하며 내면이 병든 인간입니다.
백인처럼 되고 싶어서, 인간이나 엘프처럼 되고 싶어서 자신의 고유한 신체적 특징을 모두 버리고 행동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인간들이 자신을 더러운 오크라고 뒷담화한다고 생각하여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인간 경비원들에게 갑질을 시키기도 합니다. 마치, 자수성가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 흑인이 깜둥이(Niggar)로 취급받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4. 맺음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스토리와 연결된 부분들은 제가 쳐냈습니다. 암튼, 법정물을 기대하고 읽는 것보다는 차별받고 소외받는 하등종족의 투쟁과 유리천장의 철폐를 중심으로 읽기를 권합니다. 멋진 장편소설을 써주신 유권조 작가님께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모두 <오크변호사>를 일독하십시오! 그럼 이만 말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