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싸움인 줄 알았는데 SF라고요? 이 소설을 읽고 5번 놀랐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원작의 유시열 (작가: 김상원,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10월, 조회 79

이 소설 <원작의 유시열> 시작은 간결하며 후킹하다.

– 시열 님이 제가 만들 음악을 표절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 지금 ‘만들 음악’이라고 하셨나요?

짧게나마 옮겨봤는데 ‘만들 음악’을 표절했다니 이 단락, 단번에 이해가 가는가. 뭔 개쌉소린가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 잠깐 험한 소리 죄송하다. 리뷰어지만 나 역시 창작을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표절에는 민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만들 음악을 표절했다니 이게 뭔소린가 하는 생각으로 도입부에서부터 이 소설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어떻게 풀어갈지 보자, 하는 심경이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오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시열을 ‘표절 작곡가’로 몰아가는 주리리라는 작곡가의 궤변이 꽤나 그럴싸 한 근거로 포장되어 있는 게 아닌가. 몇 줄의 문장만 더 인용하자면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습니다. 이건 뭐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리리의 음악은 완벽하게 제가 의도한 음악, 하지만 미처 그렇게는 완성하지 못했던 음악, 정말이지 제가 표절이라도 하고픈, 바로 그 음악이었습니다> 라니 느닷없이 ‘만들 음악’을 표절했다던 작곡가가 ‘갖고 있는 숨겨진 실력’이랄까. 그 음악에 대한 감탄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장이라 나 역시 그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여기 인용한 문장들 외에도 온갖 찬사가 내던져지니까, 다름 아닌 유시열의 입을 빌려서.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궁금한 거다. 그 음악과 주리리라는 사람의 정체가.

주리리는 누구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읽기 시작한 이 소설 <원작의 유시열>은 내게 5가지 놀라움을 줬다.

첫째, 궤변도 말이 되니까 재밌다. 이미 발매된 노래가 자신의 ‘것’을 표절하여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주리리의 궤변은 주리리의 곡을 들은 원작자 유시열의 반응과 음악선율에 대한 주리리의 ‘해박한 지식’과 말빨에 설득되어 ‘어쩌면… 그런 걸지도?’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인가 싶다면 지금 바로 소설을 읽어보도록. 단번에 납득할 것이다.

둘째, 천재와 범재라는 아주 익숙하고 낡은 소재가 SF와 함께 새롭게 재탄생했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천재를 알아보는 눈도 ‘꽤나 큰 재능’이지만 바로 그 눈 탓에 비극을 맞이하는 살리에리의 이야기는 나 역시 좋아한다. 물론 이게 만들어진 ‘픽션’에서 비롯된 썰이며, 실제의 살리에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평도 있지만 뭐 어쨋거나. 주인공 유시열은 본래 천재란 없는 것이고, 부단히 기술자의 마인드로 해나가는 것만이 왕도라 생각했는데 주리리의 곡을 듣고서 생각이 바뀐다. 주리리의 곡을 따라 몇 차례의 곡 수정을 거듭하며 따라하려고 애쓰는 모습 그리고 그 마음이 잘 표현되어 흥미로웠다. 설명도 그리 길지 않고, 내면 묘사도 엄청 디테일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 정서를 잘 전달해내는 능력이 이 작가에겐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를 쫓는 유시열을 단순히 범재 혹은 열등감을 가진 자로 표현하지 않고, 거대한 가상세계와 관련된 시스템의 일부로 표현하게 되는 결말이 참 흥미롭다. 이 파트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을 건데 알고 보면 재미없을 거 같아서다.

셋째, 음악플레이리스트에 ‘데스노트’적인 논법을 삽입하여 흥미로웠다. 뭔 말인가 싶겠지만 쉽게 풀어 말하자면, 이 소설 안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모아서 올려두고 서로 메시지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앱이 있다. 주인공 유시열은 그 앱을 통하여 주리리의 플레이리스트<못갖춘가을, 못갖춘마음들의 못갖춘마디>를 들으며 자신의 곡을 수정한다. 주리리의 곡을 들으면서 부족한 점에 좌절하던 어느 날, 유시열은 그 플레이리스트 목록 중 하나의 곡에서 ‘꽤 긍정적인 힌트’를 포착했다. 자신의 곡을 수정한 뒤에 그 영감을 준 곡을 지워버리는데, 놀랍게도 그 곡을 작곡한 작곡자가 사망한 채 발견된다. 즉, 이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온 곡을 지우면 원작자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게임은 달라진다. 리스트 안에 주리리의 곡도 있기 때문에 유시열은 언제든 주리리를 죽일 수 있고, 주리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설정을 작가는 참으로 담백하게 표현한다. 단문을 잘 쓰는 편인데 꽤 흥미로웠다. 잠깐 소개해보겠다.

<삭제 버튼에 손가락을 붙이였습니다. 보호필름이 유난히 시렸습니다. 그 감촉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원본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겠죠. 오른손 검지가 가늘게 부들거렸습니다.> 보호필름이 시리다는 문장에서 바로 건너뛰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상황 설명과 자신의 내면서술, 그 다음에 다시 검지가 부들거린다로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상황과 감정과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보여져서 좋았다.

넷째, 인용구들에서 ‘박식함’이 느껴지고 동시에 이야기가 더 풍성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인용한 내용들이 꽤 많이 읽힌다. 이렇게 어떠한 사실을 인용할 경우에 자칫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는 그 부분을 참 잘 조절한다. 필요한 정도의 효과만 거두고, 지루함은 날려버리는 작법이라니… 재밌었다. 특히 나는 페르시아어의 인용이 좋았는다. war nam nihadan 누군가를 죽이면, 시체를 묻고 그 위에 꽃을 심어 숨기라 라는 뜻의 페르시아어라나, 이 소설 안에서는 유시열이 주리리를 죽이는 대목에서 잘 인용되었다.

어, 잠깐만. 주리리가 죽었다고? 이런 대형 떡밥을 던지다니! 할 수도 있겠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마디 더 해주자면 주리리는 다시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주리리는 인간이 아니다. 전국민이 다 알만큼 유명한 작곡가 유시열 앞에 나타난 작곡가 주리리, 유시열이 이미 발표한 곡이 자신의 미발표 곡을 표절한 거라는 해괴한 주장을 한다. 유시열은 어이없어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그자의 곡은 모조리 다 배끼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주인공 유시열은 매우 큰 열등감을 느끼며 그자의 곡을 따라 자신의 곡을 계속 리뉴얼한다. 그런 한편, 유시열은 자신이 주리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아주 큰 ‘시크릿’을 알게 되고, 주리리를 죽여 더 크게 승승장구 하나 싶지만 주리리는 다시금 돌아온다. 이 뒤에 또 한번의 반전이 있다. 그러니 다섯째, 앞의 내용과 또 다른 전개… 예상치 못한 엔딩이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하나 있다. 뒤편의 에피소드, SF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파트가 흥미로웠는데 앞서의 내용보다는 좀 길이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다소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다. 현실의 세계를 그릴 때는 살짝 생략하고 불친절해도 때로 괜찮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타지나 SF 세계관의 이야기를 그릴 때는 다르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처럼 전체 스토리를 꿰뚫는 ‘반전’을 만들어갈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아바타나 고박사 그리고 주리리가 기존에 속해 있던 시스템과 그가 스스로 만들어갈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었다. 파트를 하나 더 분류하거나 나눠서 말미에 조금 더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리리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기에 아마 내가 더 아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더 말하자면, 대사를 꽤 잘 쓰는 편이지만 대사가 ‘덩어리’로 너무 길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정보가 너무 많이 내게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마 책이 아닌, PC 환경으로 봐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 경우에 기나긴 대사 사이에 지문 하나 정도만 추가해서 분류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소나 내면이나 장면을 짧게나마 보여주는 거여도 좋다. 특히 긴 문장이 뒤편의 반전 에피소드를 보여줄 때 많이 나오는 편이었기에 지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더 많았을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이나 다른 인물의 제스쳐여도 좋을 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곧바로 친한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또한 어제 다 읽고 리뷰 초안을 대략적으로 써뒀다가 오늘 다시 읽고 수정하여 업로드한다. 이러한 경험 또한 간만이다. 엔딩에 도달하는 순간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반전 스토리에 이만큼 흥미로운 설명이 또 있을까. 말을 고르다가 이렇게나마 표현해본다. 리뷰에 꽤 많은 글자수를 채웠지만 이 같은 설명보다도 더 크고 재밌는 이야기다. 첨언하자면,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내 몸을 임대합니다>라는 수상작품집 내에 수록된 ‘맑시스트’라는 소설을 썼다는 걸 알고 또 한번 놀랐다. 이 소설은 정치와 사유와 SF를 아주 흥미진진하고 위트 있게 엮어낸, 상상력을 끝까지 잘 끌고 간 소설이라 생각했고 그 소설집 내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재밌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잘 쓰는 작가는 또 잘 쓴다.

차근차근 브릿G에 이 작가가 연재해둔 10편의 소설을 다 읽게 되지 않을까… 스스로 설레는 마음으로 리뷰를 맺어본다. 재미있는 글에 대한 리뷰는 어떻게 쓰든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 두서 없고, 사심 가득한 리뷰로 인하여 누군가가 이 소설을 읽어보게 된다면 내겐 큰 기쁨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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