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로 매우 소설적인 작품입니다. 서술 방식, 서사 구조, 묘사가 촘촘히 얽혀 자아내는 시너지는 작품이 이런 형태의 소설이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화나 영화로 바뀐다면 너무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이 이야기를 글로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작품서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은 이 작품 자체도 서술자가 블로그에 남긴 글, 즉 ‘증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증언의 핵심적인 성질 두 가지는 그 글이 어떠한 숨겨진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쓰여지는 것이며 그 대상이 되는 사실은 증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으로부터 과거의 사건으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숨겨진 과거를 끄집어내 타인에게 알리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정의로운 고발자’라는 캐릭터가 부여됩니다. 증언자는 침묵이라는 과오를 끊어내는 속죄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증언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자연히 그와 같은 용기나 의지가 없는 ‘비겁한 악인’ 자리에 위치합니다.
작품의 주인공 역시 증언자로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있던 폐가, 불법복제본 페미콤 게임을 즐기던 매일(그게 ‘불법인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인공의 사족은 그의 숨겨진 성격을 얼핏 내보입니다.), 그 게임을 함께 즐겼던 친구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을 이어 붙이며 전개되는 스토리는 현재의 주인공이 ‘유년 시절 심해 아래 감춰둔 과거의 희미한 기억’과도 같은 게임 <Red Bastard>를 다시 얻어 플레이하게 되며 복잡하게 뒤엉킵니다. 챕터를 클리어할 때 마다 점점 기괴하게 변하는 게임처럼, 주인공도 과거 위로 층층히 쌓인 기억의 왜곡을 한 풀 한 풀 벗겨갑니다. 그 밑바닥에서 찾아내는 진실은 선명한 만큼 비극적이죠.
앞서 증언자의 역할은 고발이며, 그 목적은 속죄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증언자는 결코 위증을 해서는 안되며 누구보다도, 특히 자신이 떨쳐내려는 과오와 연관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그의 증언은 단지 또 하나의 거짓말로 눈을 가리는 짓일 뿐입니다. 이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속죄할 길도 요원해지고, 끝끝내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되죠. 내 잘못을 용서해줄 이가 세상 어디에도 없고 스스로 죄를 잊는 것조차 못할 때, 죄책감은 곧 광기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때 이르러 죄책감의 무게에서 도망칠 유일한 방법은 나 스스로 사라지는 길 뿐입니다.
지옥은 어쩌면 그런 벗어날 수 없는 자기 혐오의 굴레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