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코믹 스플래터의 가능성 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릴리와 꽈리고추 (작가: 담장, 작품정보)
리뷰어: 너드덕, 23년 8월, 조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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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장치를 코미디로 비틀어 사회를 풍자하는 방식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특히 B급 영화에서 볼법한 키치한 상상력이 가미 되면 더욱 그렇죠. <릴리와 꽈리고추>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B급 단편 코미디 호러 영상물로 실제로 봤다면 열광했을 법한 부류의 소설이었습니다.

 

영화로 상영됐다면 영화계의 마니아들을 양산하는 반면 일부 독자들에게는 외면 받는 핫한 문제작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한국 문학의 전통에서는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낯설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식 지면이나 책으로 나온다고 할 때, 한국 문단 시장 특유의 좁은 경향에 갇힌 분들이 이게 뭐야, 하고 내려놓을 가능성은 있죠. 브릿G가 좋은 점은 이런 소설을 이해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독자분들이 모여들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겁니다.

 

이 소설은 몇 가지 특수한 지점이 있습니다. 거침없이 등장하는 작가의 직접적인 주장과 정치 풍자, ‘그렇다 꽈리고추였다’ 식의 유머, 포르노 문화에 사로잡혀 그 성착취적 문화를 수호하려는 남성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에 대한 코믹한 묘사(새벽 다섯 시에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다 튀어나온 남자들의 모습이라든지) 등입니다. 하지만 가장 특수한 지점은, 리얼돌과 인형 괴담이 만나는 절묘한 지점을 캐치해냈다는 것 입니다.

 

한국의 남성호모소셜 일반에 상식처럼 자리잡은 왜곡된 편견과 판타지를 비판적으로 전복시키는 핵심이 키치한 상상과 직결되는 부분이 이 소설이 뛰어나게 만듭니다. B급 영화의 키치한 상상력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바로 ‘이미지 소비’인데요. 예를 들어 티라노사우르스가 된 목사가 닌자들과 싸운다던지(…) 상어를 타고 다니면서 총을 쏘는 공룡이라든지(…) 하는 상상력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지 않음으로 그 기이한 이미지만 소비하는 오락물에 그치죠(그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서도).

 

그래서 B급/키치한 상상력을 통해 풍자를 시도하는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전개된 장르적 상상이 얼마나 절묘하게 고안됐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소설의 내적 의미와 그 상상력이 따로 노는 순간, 소설의 서사적 구심력마저 틀어지거든요.

 

리얼돌은에 부여된 형상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는 지속적으로 지적된 문제입니다. 작가는 호러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컬트한 인형 괴담을 동원하여 서사적 인과성을 부여함으로, 성 착취적 이미지로 물화된 여성의 형상을 가진 인형을, 그로테스크한 거세 병기로 순식간에 변화시킵니다. 왜곡된 여성의 형상이 박살나고 남성의 공포 대상, 그것도 거세 공포의 대상으로 전복되지요. 리얼돌에게서 도망치고자 하는 남성들은 특유 기이한 끈끈함으로 서로를 챙기기도 하는데요. 이 소설은 남성호모소셜에서 지속되어온 관습까지 풍자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풍자들은 리얼돌이라는 소재와 인형 괴담의 결합이라는 키치한 상상력을 통과하여 가능해집니다. B급 상상력이 따로 떨어져 놀지 않고, 소설이 시도하는 풍자의 핵심으로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2.

호러 소설의 전통적인 전개상 ‘추격자’에 해당하는 릴리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소설 내적 전개상 릴리가 공포의 대상이 맞긴 하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남성호모소셜 내의 여성에 대한 고정된 편견입니다. 자신의 단순한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성 착취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압하고, 합리적 근거를 죄다 단순한 목소리로 치부하며, 페미니즘을 낙인 찍는 목소리들이 그렇죠. 무엇보다 대통령이 그런 남자들을 위해 벙커를 마련해준다는 설정이, 이 세계의 진짜 두려움입니다.

 

요즘 종종 친구와 하는 장난삼아 주고 받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 뜨면 내가 디스토피아에 있는데 디스토피아 콘텐츠 왜 보냐?” 실제로 이 소설에서의 면면은 디스토피아적(남성들이 죄다 리얼돌을 이용하고, 정부는 리얼돌에 의한 거세 공포에 시달리는 남성들에게 벙커를 만들어 수호하고…)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현실에서 이 같은 디스토피아가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요? 거창한 거대 담론으로 포장할만한 신념이라도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얄팍한 개개인의 비뚤어진 욕망에 근거할 뿐입니다. 그 욕망은 이 소설에서 표현한 남성들의 우습기 그지 없는 성기 수호 과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와 산업이 그들의 욕망과 영합한다는 게 씁쓸한 일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의 통쾌한 결말을 읽으면서도 씁쓸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4.

앞서 부천국제영화제를 언급했는데요. 저는 이 소설에서 한국형 스플래터/슬래셔 물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제가 요새 그런 류의 장르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에서 서술되는 ‘릴리’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수많은 스플래터 무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꼈거든요. 대표적으로 비슷한 부류의 영화를 찾으라면 <죽여줘 제니퍼!>나 <티쓰> 가 있을 것입니다.

 

릴리가 좀 더 풍성하게 묘사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릴리를 인간처럼 표현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슬래서 무비에서 프레데터 역할을 맡는 캐릭터는 오히려 평면적이어야 재밌죠. 다만 남성 주인공이 느끼는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가 릴리의 형상 면면에 드러나다가, 이후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함께 그 편견 가득한 신체가 기괴하게 변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했으면 더 파괴적인 글이 나오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어요. 이 소설은 포르노적인 세계관에 살고 있는 남성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왜곡된 대상을 파괴해버리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러한 시도를 자칫 잘못하면 여성의 신체를 포르노적으로만 묘사하는 데에만 그칠 수도 있다는 위험이 따르긴 합니다.

 

두 번째로는 스플래터 형식을 적극 차용해서 수위를 끌어올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재도 호러물의 규칙을 잘 가져와 적극 활용하고 계신데요.(특히 집 안에서의 대결은 그렇지요.) 송길태가 릴리와 사투를 벌이는 과정 중 심한 부상을 입어 피를 철철 흘리며 도망가는 장면들이 있으면 해서요. 리얼돌들이 노리는 바가 ‘거세’라는 전개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신체부위가 아작나는 난도질 장면을 생략한 것일까요? 그런 경우 친구를 등장시켜 먼저 거세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송길태가  두려움에 빠지는 서술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전술한 <티쓰>에서는 주인공에게 성폭력을 가하려던 남성의 성기가 잘려나간 뒤 개한테 잘근잘근 씹히는 장면이 있고(이런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죽여줘 제니퍼!> 역시 악마 들린 주인공이 여성을 희생양으로 일삼던 남성들을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송길태가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주고 받던 사람이 알고보니 이웃 중에 있었고, 송길태와 함께 탈출을 감행하다가 이웃은 릴리에게 걸려 거세를 당하고… 그걸 눈앞에서 목격하는 송길태… (이 장면의 경우, 이웃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 남성끼리 포르노를 공유하는 문화도 풍자할 수 있고요) 그리고 도망치는 중 이미 거세를 당해 길거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널브러진 남성들이 늘어져 있는 걸 묘사해서 송길태의 공포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방향도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 안에서 작가님의 논평까지 거침없이 전개되므로, 스플래터물의 장르의 특성을 더 가져와 쎄게 밀고 나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특색 있는 좋은 소설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P. S.

작가님의 <유물 행성>을 재밌게 읽고 있었습니다. 요즘 계속 휴재 상태던데, 먼 후일에라도 꼭 완성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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