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싸면 싼 이유가 있을 겁니다>라는 짧은 소개글이 인상적인 이 소설 <반지하-보증금 1000에 관리비 포함 월 35만>. 제목과 소개글만 봐도 한번에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동시에 이 방에는 어떠한 저주가 깃들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이 매력적인 제목을 보는 순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보증금 1천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 35만원짜리 방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때가 있으니까. 무려 8년도 전의 이야기다. 발품을 엄청나게 판 끝에 나는 반지하가 아닌, 지상의 집을 구했다. 원래 40만원으로 책정될 뻔한 방이었지만 부동산 아주머니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35만원에 끝났고 원래 관리비가 없는 곳이었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가 별도였지만 그 정도야 너무 감사한 수준이었다. 나는 이 방에서 8년을 살았다. 물론,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옆집이 약 3-4번은 바뀌었는데, 한번은 저녁만 되면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서 무섭지만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을 때 나온 사람은 1명 뿐이었다. 컴퓨터나 TV소리를 크게 켜놓고 사는 거였다. 또 한번은 계속 시끄럽게 굴다가 집주인과 싸운 뒤에 나간 두 명의 남자도 있었다. 그들이 나간 뒤에도 그 집에서는 여러 노끈과 박스가 나왔다. 다행히 범죄현장이거나 한 건 아니었다. 주로 택배 물품을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반품도 많이 오고 나가야 할 짐도 많고, 뭐 그랬던 거다. 그러니 나의 사례처럼 너무도 익숙한 공포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혹은 그 옆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하는 것 말이다.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는 공포기 때문에 더 두렵고, 괜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주위를 한번 휘 돌아보게 만드는 것… 일상 공포가 가진 힘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도입부는 좋았다. 한세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첫 독립에 대한 토로까지 문장이 깔끔한 편이어서 몰입감도 있었다. 이웃 사람들에게서 ‘기이한 이야기’들을 자꾸만 듣고, 실제로 벽에 있는 벽지가 붕- 떠 있다는 것도 공포감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어떠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나만 모르는!> 이것만큼 소설의 주인공과 독자의 간을 떨리게 하는 서사도 없으니까. 다만, 그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이 소설 내에서 공포스러운 장면의 거의 다 <꿈>으로 치환된다. <꿈>이란 설정은 참, 무적이면서 동시에 ‘허망한 것’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은 모두 ‘꿈’으로 돌려버리면 설명이 쉬워진다. 하지만 바로 ‘꿈’이기 때문에 허무하다. 어차피 실질적으로 고통 받은 것은 없고, 단지 기묘하고 기이한 꿈을 꿨을 뿐이라면 꿈에서 깨면 그만이다. 이 꿈을 갖고 공포스럽게 한 작품들을 찾아보자면 대체로 이런 식이다. 꿈인 줄 알았는데 지속적으로 현실에 영향을 줘서 주인공에게 해를 끼친다거나,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서 정신적으로 몰아가는 그런 유형의 이야기들인데 이 소설은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물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망상 아닌 환상(혹은 현실에 가까운 무언가)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려진다. 다만, 너무도 짧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거기다 삶의 끝까지 몰려서 살이 9kg이나 빠진 그녀가 내뱉는 폭언이 “야이 썅! 주는 대로 처먹지 쫑알쫑알 뭔 말이 많아! 시발 까탈스럽고 잘 나신 엠제트! 염병할 엠제트!”라는 부분에서는 살짝 말을 잃었다. 미안하지만… 유행어 혹은 신조어가 소설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경우 그것이 기대한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발화되고 마는 말이 아니라, 문자로 남기 때문에 설사 코미디 소설일지라도 제대로 기능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하물며 이 소설은 <호러>의 장르에 속해 있다.
더구나 이 주인공이 44살까지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김밥집에서 일하고 있는 건 MZ 세대 때문이 아니라 남자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만약 주인공이 갖고 있는 근원적 공포에서 오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나는 주인공의 외침에 조금 더 몰입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점은 소설 도입부에서 어려서부터 무서운 일을 많이 겪은 주인공이 ‘남자 공포증’을 갖고 있다 했다면, 이 저렴한 집에서 겪는 악몽이 주인공의 ‘근원적인 공포’와 관련이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물론, 뒷부분에 가면 이 모든 악몽을 유발시킨 사람이 바로 남자이긴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과 큰 관련이 없다. 주인공은 그에게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중반 이후로 가면서 이 방의 <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아쉬운 점은 장면화하여 하나의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이용해서 이 방이 어떠한 곳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의 ‘목소리’를 통하여 설명되었다는 부분이다. 설명은 무섭지가 않다. 드라마 <악귀>가 오컬트 미스터리라는 설정에 비교하였을 때 ‘전혀 무섭지 않았던 것도’ 설명이 많아서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 차가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호러,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고 이 장르는 다른 장르에 비해 마이너한 편이다. 이 장르를 즐겨 읽는 팬층이 많다는 소리다. 웬만하게 장면화를 잘하지 않고서야 무섭게 느껴지질 않고, 설명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무섭기는 커녕… 아, 그렇구나… 가 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하여 자세한 스토리는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이 소설의 엔딩부 전개가 아쉬웠다. 도입부에서 흥미롭게 느끼면서 몰입했기 때문에,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 공포를 잘 끌어온 소설이어서 더욱 아쉬웠다. 주인공은 원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서 안락하게 살아가고, 그 주인공이 머무르던 방이 있던 빌라는 ‘크나큰 비극’을 맞이한다. 그 빌라에 있는 사람들은 ‘그 비극’을 당할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안락한 가정 안에서는 행복하고 그 밖에서는 비극만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결말이 아쉬웠다.
주인공이 머무르던 방에 도사리고 있던 <비극의 진상>은 공포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야기기도 해서, 더더욱 일상의 공포를 불러 일으키기 쉬웠다. 이를 테면 필자의 경우 그 대목을 읽으며 잠시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 연쇄 살인사건은 납치되었다가 도망쳐 살아 남은 피해자의 진술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하면서 유명해졌다.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해 나온 피해자의 진술을 생각해보면 그 반지하가 범죄 장소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반지하는 음습하고, 특히나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는 무시무시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저 생활을 영위하는 곳에서, 어느 방에서는 누군가 죽어나가고 아무도 몰랐다는 거니까.
설정이 좋았던 만큼 아쉬운 마음에 리뷰 글이 길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에는 많은 힘이 든다고 생각한다. 저렴한 방에 들어갔던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악몽에 시달리다가 탈출하게 되는 전체적인 서사의 틀은 좋았다. 주인공이 잠시 세들었던 반지하 방에 깃들어 있는 비극도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 공포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이것이 잘 조합되었다면 좋겠지만, 이 소설 그 자체만으로도 재밌게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를 보고 궁금해졌다면 한번 스윽 읽어보도록. 96매 분량에 문장이 가독성 있게 잘 읽히는 편이라 스윽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