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술한 작품 감상

대상작품: 달의 너머 (작가: 으후루, 작품정보)
리뷰어: 애늙은이 늙은애, 23년 8월, 조회 32

이 소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아주 작은 슬릿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너무 얇고, 너무 가늘고, 너무 두루뭉술하고, 보통의 인생들처럼 적당하게 적당하다.

작품의 배경은 기본적으로 SF지만, SF로서의 SF는 아닌 것 같았다. 엄마의 직업은 사실 수영선수나 화가로 대체되어도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와 우주식물이라는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삭막하고 답답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따뜻해지게 하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나는 그토록 불우한 주인공의 인생을 훑어보면서도 어쩐지 비극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딱히 구체적이거나 입체적이진 않다. 가족은 짜증이 나게 하는 사람들이지만, 후반부에서 별 일 없단 듯이 눈감아줄 수 있을 정도로 두루뭉술하다. 갈등이나 오해가 있으면 해소하거나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선 딱히 이렇다 할 결말을 내놓지 않은 채 그대로 삶을 지속한다. 마이너스 요소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작품 특유의 정서라고 생각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다.

그와 비견되게, 엄마에 대한 묘사와 엄마가 주인공에게 해준 말은 조금 감명깊었다. 엄마에게 특히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아마 작가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은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너무 두루뭉술해서, 그저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에 대해 별 감흥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한시간 뒤면 잊어버릴 내용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부담없이 읽으며 편해질 수 있던 것 같다.

 

감흥은 없어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감흥이 없다 뿐이지, 이 작품에서 다룬 후반부는 꽤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작품에선, 어머니의 희생은 자식의 성공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선 아니다. 자식은 모든 것을 불태워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꽃피운다. 그 서사 자체는 마음에 쏙 든다.

 

결론: 이 작품은 두루뭉술하다. 두루뭉술한 매력이 있다. 죽어서 꽃을 피운 어머니의 마지막은 가족들을 다룬 성장소설에서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또 다른 결말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사실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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