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륵다르륵다르륵 쳇바퀴 굴러가는 소리.
꼬릿한 것 같으면서도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묘한 냄새.
사각사각 톱밥 사이를 파고드는 소리.
꼬물거리며 몸을 동그랗게 마는 몸짓.
내가 키웠던 햄스터를 생각할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체구에 관계없이 한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고 떠났던 그 꼬물이에게는 지금도 미안할 뿐이다. 더 책임감있는 주인을 만났으면 좋았지 않을까. 동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그들에게는 함께했던 그 기억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인호에게는 별이가 바로 그런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별이는 아쿠아리움에서 생활하는 큰돌고래로, 아쿠아리스트인 인호가 애착을 갖고 돌보는 대상이다. 아픈 별이를 위해 씹기 편한 작은 정어리에 일일이 영양제 캡슐을 박아넣는 인호나, 그런 인호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나마 인호를 보러 온 별이나. 승훈이를 떠나보내고 상실감에 몸부림치던 인호의 곁을 지켜준 건 별이었던만큼 그 둘은 서로가 무척이나 각별했을 것이다.
“가지 마세요. 가지 않아도 돼요.”
“아저씨 탓이 아니에요.”
“그동안 미안했고, 고마워요… 이 말, 꼭 전하고 싶었어요…”
“울지마요 아저씨…”
아이가 별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서술이라든지 대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나는 아이가 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별이 되어 사라지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던 인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애정을 가졌던 대상이 모두 자신보다 먼저 떠나갈 때, 남겨진 사람은 죄책감을 갖는다.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더 신경써줬더라면, 내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과 같은 가정을 계속 반복하며 상실의 늪에 깊이 잠겨든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였을 뿐인 것이다. 남겨진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떠나는 사람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질 않은가. 별이가 떠나가면서 인호가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있기를 바랐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아픔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인호는 살아갈 날이 아직 남았다. 그런 인호가 걸어가는 길에는 별이가 함께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