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가 ‘사랑’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사랑은 왜 낯설게만 느껴질까요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황천특별공무원 (작가: 한밤,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7월, 조회 42

이 소설 <황천특별공무원>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들떠 있었다. 동양판타지를 좋아하며,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심 많은 나여서다. 더구나 죽은 자들 역시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한 자만이 저승사자라 불리는 ‘황천특별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 재미 있었다. 이 재미는 이 소설의 전체 회차를 결제하게 만들었다. 또한, 은석이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일상 속의 사고로 한순간에 망자가 된다는 게, 우리가 흔히 보며 살아가는 인생사와 통해서다.

언젠가 죽는다는 ‘명확한 명제’ 외에는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죽음이 언젠가 찾아온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알 수 없어서 삶과 죽음이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죽음 이후에 세상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세상, 이승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승사자의 취직에서부터 생태, 저승사자로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다는 시도는 나의 취향 여하를 떠나서도 값졌다.

좋아했기에, 신나서 빠르게 결제하고 다음 회차를 빠르게 넘겼던 나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짚고 싶다. 개인 취향의 차가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난 뒤에 갑작스러운 로맨스의 전개는 준비되지 않은 독자에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도입부, 초반 스토리를 읽으면서 나는 은석이라는 황천특별공무원의 좌충우돌 사회초년생물을 기대했다. 저승도, 이승과 비슷하며 죽은 자들의 세상이라는 차이 밖에 없다 하더라도 죽은 이후의 세상에서 분명 다르게 깨우칠 만한 거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는 은석과 동료, 선후배간의 이야기 그리고 사건들로 충분히 풀어갈 수 있으리라고 봤다. 그만큼 초반부 설정과 캐릭터가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다.

허나 이 소설의 대다수를 이룬 것은 성리와 은석 사이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였다. 나에게 있어서 다소 힘들었던 부분은 성리라는 캐릭터가 매력이 없다는 데서 시작됐다. 캐릭터란 호감이 아니어도 공감갈 만한 포인트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호감으로 시작한 캐릭터가 ‘공감’을 얻게 되는 순간, 그 사람에게 이입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영화 <똥파리>를 보며 느꼈다. 껄렁하며 미래도 없고, 사사건건 욕설을 부르는 날건달의 삶에 이입해서 눈물을 흘리게 될 줄 나는 그 영화를 보던 초반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반면, 이 소설 속에서 성리라는 캐릭터의 시작점은 호감도 비호감도 아니었다. 병환으로 죽은 아버지의 병원비를 책임져야 하며, 혈혈단신 홀로 남았는 데다가 빚의 무게마저 짊어지고 있는 불운한 여자애였으니까. 그러한 여자애가 ‘어쩌다 보니’ 사기범죄를 일삼는 조직에 들어가는 거까지도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허나, 나는 그 여자애가 갖고 있는 알량한 도덕심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을 꾸고 싶다며 친구에게 어렵사리 부탁한 것도, 친구가 소개해준 의심스러운 일자리 제안에 응하기로 한 것도 본인이었다. 그런 본인한테 그 일자리를 알려준 친구 역시 자신의 비밀을 알려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범죄 행각에서 벗어 나온 뒤로는 그 친구를 대할 때마다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무시해서다. 사기행각을 하는 건 나쁜 일이다. 허나 본인 역시 그곳에 기꺼이 응해서 돈까지 받아 놓고, 우연적으로 (자신의 노력 없이)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그 친구가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캐릭터에 이입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때문이었다. 사기 범죄 행위에 스스로 들어갈 정도로 그녀를 짓눌렀던 빚은 아주 우연하게 소멸된다. 죽음이 없어서 고통받던 한 귀신 아닌 귀신에게 ‘죽음’을 판 대가였다. 대가가 있는데 무슨 ‘우연’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본인이 갖게 된 억울한 일들(죽은 자들을 목격한다거나 악귀가 붙는다거나) 역시 그녀에게 반한 저승사자 은석과 브로커가 아주 열심히 해결해준다. 즉, 성리라는 캐릭터는 스스로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물론 이 소설에 등장하기 전까지의 백그라운드 기록을 훑어보자면 가족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 빚을 갚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사’이고, 이 소설 내에서는 이 여자애가 위기를 겪고 스스로 노력하거나 해결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다. 모두 남이 해결해주는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성리에 이입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내로남불’식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도덕심은 높고, 자신만의 잣대로 남을 평가 절하하는 형태의’ 캐릭터,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남들이 다 좋아라 해주는 알 수 없는 유형의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저승사자인 은석과 얽히는 것에 있어서도 성리라는 캐릭터에 은석이 일방적으로 꽂힌 것 외에는 무엇도 없다. 얼굴이 예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고, 본인이 놓쳤는데 ‘죽음’마저 사라져버린 망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단 것도 강력한 이유일 것이다. 허나 그 정도의 이유라면 굳이 로맨스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승사자, 악귀라는 소재와 설정을 빼고 두 캐릭터만 놓고 보면 결코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두 명에게 ‘필연적인’ 사랑을 억지로 추가한 형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내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란.. 로맨스가 이뤄져야 해서 이뤄졌고, 세팅값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두 캐릭터가 움직였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로맨스에 있어 지금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특히 로맨스 장르에서는 캐릭터의 매력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정말 중요해서다. 두 사람이 여러 방해물을 이겨내고 ‘사랑’을 이뤄내는 유형의 장르이기에 두 사람의 감정선이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전개되면, 몰입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감정적인 공감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 둘이 왜, 어째서?”라는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는 장르여서다. 어쩌면, 이 급작스러운 로맨스가 전개되기 이전에 이 소설이 그려냈던 저승의 모습에서 저승과 저승사자라는 소재를 조금은 색다른 시각으로 다뤘을 거라 기대했기에 기승전 로맨스의 흐름에 더 아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스포를 막기 위해 더 긴 이야기를 적진 않겠지만, 은석 그리고 성리와 함께 ‘삼각관계’로 그려지는 저승 브로커 캐릭터의 행동들도 참 이상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캐릭터가 왜 성리에게 매달리는 건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매달리면서 일으키는 사건들이 모조리 자신의 얼굴에 흙을 뿌리는 정도의 일이었는데, 일반적인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면 저렇게까지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 수 있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묘하다, 어째서? 싶은 로맨스가 끝없이 이어지다 보니, 캐릭터들이 어떻게든 ‘가야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가야 하는 방향으로, 꽤 많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서 끝까지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는 건 큰 재능이라 생각한다. 일개 리뷰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날카롭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다만, 아쉬운 마음이었다. 캐릭터가 단단하게 구축되고 난 뒤에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감정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 언제나 해나가야 하는 과제라 생각한다. 이 사랑은 내게 너무도 낯설고, 그래서 이입하기 어려웠다. 허나 두 캐릭터가 지면 안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