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우주적 사춘기 몽상으로 묘사된 기나긴 추도사 공모(감상)

대상작품: 사랑하는 지구인에게 (작가: 은헌, 작품정보)
리뷰어: 잘난척사과, 23년 7월, 조회 20

누구나 사춘기를 겪는다. 몸속 호르몬이 요동치고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운 시기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진부한 묘사는 진실 그 자체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기에 접어든 사람은 타인이 이해하기 힘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아닌척해도 누구나 자신만의 몽상가적 기질을 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시절의 감수성이 서려 있는 글이다. 얼핏 지구인과 외계인의 사랑 이야기인 듯 시작되지만,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것은 감수성에 사무쳐 점점이 사라져가는 추억을 부여잡고 써 내려간 기나긴 추도사였다.

글의 줄거리가 꽤 독특하다.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하루하루 죽기만을 바라는 문영 앞에 나타난 외계인이 화자로 등장한다. 외계인은 모든 이들이 숨김없이 텔레파시 능력으로 소통하는 세계에서 왔기에 지구인의 생각과 기억을 고스란히 알 수 있지만 신체 구조가 다른 탓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일방적인 소통 속에서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지구인의 생각과 기억을 숨김없이 알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글은 외계인의 시점으로만 진행된다. 독백과 같은 구조로 계속해서 ‘너는 이렇게 했었지’, ‘너는 이렇게 생각했었다’라며 묘사되는데 현실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문영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외계인이라는 점에서 대비되는 인상이 흥미롭다.

지구에서 시작된 동거 생활은 어느새 우주여행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SF 장르가 아닐까 싶지만, 글쎄.. 개인적으로는 판타지 장르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냥 장치 요소로 외계인이 등장하고 우주여행이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굳이 엄밀하게 장르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작가적 상상을 펼쳐내기에 적합한 도구를 사용했을 뿐이다.

총 24회로 구성되어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될법한 내용들이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파악하지 못했다…. 식으로 뭔가 분석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 있어서 이런 식의 문체가 어떤 하느니, 작가의 기교나 SF적 기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필요한 것은 새벽 시간대의 충만한 감수성과 사색에 필요한 조금의 시간뿐이다. 사춘기 시절 한 번쯤 고민해 봤을, 아니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어봄 직한 힘든 시기에 떠올릴 삶의 힘겨움에 대한 종말적 추론, 망상, 기원, 희망 따위로 버무려진 글이다. 글의 주인공이자 끝없이 죽기를 갈망하는 문영에 대한 애정이 어린 추도문은 굳이 분석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마지막까지 읽고 느끼면 그만이다 라는 말로 맺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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