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브,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말하는 뱀’의 충고대로 그 누구에게도 편지를 보여주지 않고 너 혼자 읽고 있다는 뜻이겠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에덴동산의 규칙>. 편지 형태로 작성하는 ‘서간체 소설’의 경우 잘 읽히지만, 내용이나 상징을 담기 다소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나름의 시선으로 ‘에덴동산’을 재해석했다는 게 재미 있었다.
흥미롭게 읽던 와중에 “지금까지 에덴에서의 삶은 행복하고 평화로웠지. 나는 네 행복을 망가뜨리러 온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약속할게. 날 믿는다면 에덴보다 더한 천국을 보여줄 거야”라는 말을 하는 대목에서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영화 <아가씨>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어쩌면 10여년이 흘러도 이걸 대체할 만한 대사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좋아하는 말인데, 영화 <아가씨>에서 숙희의 도움으로 감옥 아닌 감옥에서 탈출하는 아가씨의 상황과 ‘천국처럼 보이는 에덴동산’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브의 상황이 유사해서 더 재밌었다.
우리는 <에덴동산>은 천국과도 같은 곳,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와 아담은 불우한 사람… 그들의 원죄를 우리가 감당하는 것, 이라고 여겨왔지만 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게 아닌가. 이 ‘편지 형태’ 소설의 화자 ‘말하는 뱀’에 따르면. 다른 상황은 주어지지 않고 오직 ‘말하는 뱀’의 편지 내용으로만 구성된 소설이기에 중간중간 화자를 ‘믿지 못할 만한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 역시 깜찍발랄하게 귀엽다. (상황상 귀여운 상황은 아닌데, 화자의 어투나 표현법이 귀여워서 그렇게 표현해보았다)
스포를 막기 위하여 자세하게 쓰진 않겠지만 이 소설 내에서도 결국 이브는 ‘선악과’를 따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내용과는 다르다. 다른 의도, 다른 제스처로 선악과를 딸 것을 ‘말하는 뱀’은 권고한다. ‘말하는 뱀’은 진짜 뱀은 아닌, 에덴동산 바깥에서 이브에게 말을 전하는 자로 나오는데, 그의 정체는 소설이 끝나갈 무렵에 나온다. 또한 그가 왜 이브를 끝없이 불렀는데, 무수히 많은 이브들을 향해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고 기분 좋게 웃었다.
부디 날 죽이러 와.
이 대사가 갖고 있는 힘은 살리러 오란 말 보다 더 크다. 내 취향이 이쪽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짧은 소설이고, 서간체 소설이어서 많은 내용을 보여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실상 완결된 소설이라기 보다 프롤로그처럼 느껴지는 아주 짧은 글이었다. 허나 흥미로웠고 삽시간에 읽었다. 근래 많은 콘텐츠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는데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고, 모든 콘텐츠는 취향의 영역이라면… 내 취향이면서 완성도 있거나 매력적이어서 반하게 하는 작품은 갈수록 줄어드는 거 같다… 나도 그렇게 못쓰는 판이니 뭐) 오랜만에 유쾌하게 잘 읽었다.
그냥, 글은 읽고 싶은데 긴 글은 읽고 싶지가 않을 때, 나처럼 콘텐츠의 홍수 속에 혹은 읽거나 봐야만 하는 것들에 갇혀 있다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클릭 버튼 한번 눌러보도록. 재밌다, 소설은 그거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