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놀렸어, 이 요망한 인공지능이! 감상

대상작품: 나를 조립한 녀석들 (작가: 신하리, 작품정보)
리뷰어: 잘난척사과, 5월 22일, 조회 10

앞서 단편 “세계의 규칙을 디버깅하는 방법”에 대한 단상을 올린 바 있는데 사실 그보다 먼저 읽은 게 지금 소개할 ‘나를 조립한 녀석들’이다. 위트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어느 장르보다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평소 SF 단편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 작품 역시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글이기에 같은 작가임에도 소개할까 한다.

본 작품은 본인을 인간으로 생각하며 직무를 수행하던 로봇 마을의 수리공 로봇 74호가 어느 날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모험을 나서고 여러 일들이 벌어지면서 진실과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는 내용의 글이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자신을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생각하는 건설 로봇들만 사는 마을의 하루가 제법 그럴싸하게 묘사되어 펼쳐진다. 판타지와 다르게 sf 작품이라면 이런 현실적이거나 있을법한 묘사가 타당성을 가져야 재미가 있다. 하드 sf 장르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는 부분이 흥미롭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율 건설 로봇들만 생활한다면 이런일도 있을 수 있겠다 싶은 작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여러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도 살짝 보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들 중 몇몇 유명 작품 속 클리쉐들이 곁들임 야채처럼 스리슬쩍 끼워져 있어서 해당 부분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극의 일부 뉘앙스는 최근 개봉했던 핀치라든지, 아시모프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겨서 찬사를 받았던 바이센테니얼맨이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마지막은 성경…에서 차용했다고 하면 오해이려나? 뭐랄까, 잘 버무려진 비빔밥..각종 신선한 해물들이 잘 조리된 짬뽕? 같다면 욕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만 보자면 꽤 장편 소설의 느낌이 들지만, 작가가 쓸데없이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지 제법 농밀하게 압축해서 빠르게 전개되는 단편이다. 작가가 한국인임이 분명하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래서인지 극의 시간 흐름도 과감하게 생략되고 건너뛰고 있지만 어색하다는 느낌은 없다. 역시 로봇이 주인공이라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앞서 서평을 올렸던 “세계의 규칙을..”에서는 작가가 고의적으로 웹 소설 문체 정도로 맞춰서 블랙 코미디 느낌을 물씬 풍겼다면 이번 작품은 약간의 유머러스함이 살아있을 정도로만 정제된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강약 조절을 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중간중간 어? 뭐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도 후반부에 잘 설명하고 있어서 나름의 타당성을 세우고 있지만 로봇과 인간사이에 무엇인가 더 있을것 같은 뉘앙스에서 분량상 묘사를 생략한듯한 인상인데 조금 아쉽긴 하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로봇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류의 이제는 흔해빠진 주제 의식을 다루고 있는 글이고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이감 자체가 얕은 편이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저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음미하고 넘어가도 되지 않겠나 싶다.

작가의 다른 단편들도 기대된다는 말을 끝으로 극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 한 마디를 남겨 본다.

“우릴 놀렸어, 이 요망한 인공지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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