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초•중•고등학생들을 보며 말한다. ‘좋~을때다!’ 하고. 마냥 친구들끼리 까르르 웃고 있는 걸 보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싶지만, 찬찬히 그들을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성적이라든지 외모라든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든지 하는.
그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친구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가족보다는 오히려 또래집단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다보면 정작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는 자기 전 잠깐 함께하는 것 말고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잘 없다. 그러나 또래집단과는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하루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만큼, 또래집단 내에서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무척 중요한 요소다. 과장을 보태 표현하자면 절대적인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정우는 그런 또래집단 내에서 제일 약자에 속한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아이’인 한경과 그 무리에 ‘찍힌’ 정우로서는 하루하루 등교하는 것이 괴롭다. 한경의 괴롭힘은 나날이 수위를 높여가고 다른 친구들은 도와주지 않는다. 가해자와 방관자들 사이에서 피해자인 정우는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한다. 소민이 내밀어준 작은 손길 말고는.
교실은 왁자지껄하고, 친구들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 혼자 소외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타격이 크다. 정우와 소민은 이런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하려 노력한다. 정우는 한경의 잭나이프를 숨기고 잡아떼는 것으로, 소민은 따박따박 항의하는 것으로. 방식은 다를지라도 가해자 한경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정우와 소민의 저항은 별볼일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자존감마저 잃지는 않겠다,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소리없는 외침이자 처절한 노력이다.
중간에 정우의 엄마가 항의를 할 때와 아이들을 괴롭힐 때 보여준 한경의 태도는 어떻게보면 이기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권력과 돈만 있으면 뭐든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한경의 모습이란 얼마나 꼴사나운지.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어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꼴사나운 모습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게 태반이다.
소민으로 타깃이 옮겨가면서 한결 여유가 생긴(?) 정우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소민을 돕는다. 정우가 사용한 방식은 소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단 복수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을까. 가해자가 자기를 제일 괴롭혔던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여 보복을 한 것에는 그런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지 않았나 싶다.
한경이 정우와 소민을 괴롭힐 때 방관자로 남았던 다른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정우를 지지하는 걸 보았을 땐 의아하면서도 통쾌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설이 현실적이라는 법은 없으니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 것에 불만은 없으나 미리 관련 복선을 깔아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결말을 읽고 다시 도입부로 올라가면 정우가 그래도 편안해졌구나하고 짐작이 되어 안심이 된다. 소민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지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긴 했지만 어쨌든 정우와 소민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한경에게 맞섰다. 꺾이지 않고 어떻게든 대항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언젠가 그들에게 양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