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추리물에 메타발언을 끼얹는 책빙의자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작가: 고수고수, 작품정보)
리뷰어: 비롯, 23년 4월, 조회 49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는 장르소설 트렌드 중 하나인 ‘회귀/빙의/환생 판타지’ 중 ‘책빙의물’에 속한다.

다만 많은 수의 책빙의물 주인공들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빙의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추리소설 ‘밀른 가문의 참극’에 빙의해버린다. 심지어 주인공을 빙의시킨 ‘신’은 친절하게도 주인공을 빙의시킨 목적과 돌아갈 수 있는 방법, 보상까지 제시해 준다. 보통의 주인공들은 미리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초~중반을 무난히 넘기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시작 시점에서 진범이 죽어버린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출발지점부터 마구 꼬여버린 추리소설 속에서, 연쇄살인의 두 번째 희생양인 ‘레나 브라운’에게 빙의한 주인공은 살아서 책 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소설은 미스테리 추리 소설답게 ‘책빙의’라는 주인공의 상황마저 서술 트릭으로 활용한다. 주인공 레나는 원래 읽었던 소설의 전개를 떠올려 사건을 해결해 보려 하지만, 이미 진범이 죽어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살인사건이 자꾸 발생하는 전개 속에서 원래의 지식은 오히려 레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원래의 주인공 탐정 윌 헌트는 ‘윌 헌트 시리즈’ 작가의 애매한 필력으로 인해 애매한 실력을 가졌지만, ‘주인공 보정’으로 경찰과 목격자들의 조력을 얻어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레나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라는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역시 ‘주인공 보정’을 어느 정도 받아 윌 헌트의 조수가 되어 함께 사건을 파헤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책빙의자’라는 레나의 특성으로 인해 메타 발언이 난무하는 부분이다. 추리 소설 독자로서 잔뼈가 굵은 레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추리 소설의 법칙을 떠올리곤 하는데, 윌 헌트의 잘생긴 얼굴과 언변을 두고 ‘주인공 보정’이라고 부른다거나, ‘동요 살인은 흔한 소재’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추리소설의 조수는 어느 정도 멍청해야 독자들이 이입하기 좋다’며 본인의 부족함을 자조하는 부분이 그렇다. 특히 살인이 벌어지고 윌 헌트가 달려오면 ‘그렇게 명탐정이라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막아 보라고! 사신 탐정!’ 하면서 속으로 화를 내는 장면이 꼭 들어가는데, 연쇄 살인을 다룬 작품이다 보니 레나가 화를 내는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독자도 따라서 윌 헌트에게 ‘사신 탐정!’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 메타 발언은 심지어 본편에 적용될 때도 있다. 레나가 ‘초반에 탐정이 틀린 결론을 내는 소설도 있지만, 독자들은 책의 남은 두께를 보고 지금 지목당한 사람이 범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를 연재 중에 실시간으로 읽은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완결 후에 읽은 나는 윌 헌트가 범인을 지목하는 시점에서 남은 분량이 40% 이상임을 보고 저 사람은 진범이 아님을 깨닫고 말았다. 물론 윌 헌트가 지목한 범인이 사실이라면 ‘범인이 모든 것을 자백하고 쓰러져 눈물을 흘리다가 경찰에 인계’되는 클라이막스가 상당히 맥빠진 전개가 되어, 레나를 빙의시킨 ‘작가’가 원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 또한 레나 못지 않게 평범한 독자인 까닭에, 진범을 레나와 윌 헌트보다 앞질러서 추리한다거나 하는 즐거움을 누리진 못했다. 다만 마지막에 진범을 몰아붙이는 장면에서, 평범하던 레나도 주인공답게 성장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멍청이 독자의 세계에 나만 두고 가지 마!’ 라는 구질구질한 감상이 들고 말았다.

시작에 반전, 중간에 반전, 끝에 반전의 반전까지, 신선한 추리물이자 신선한 책빙의물인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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