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빛 수사. 좋은 제목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달빛과 수사라는, 딱히 공통분모가 없는 두 단어가 만나 독특하면서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떤 이유로 이 두 단어가 만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제목이 자연스레 이야기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연여름님의 소설에는 좋은 제목들이 많군요. <시금치 소테> <캐트닙 네트워크> <겨울 이론> <구름을 터트리면> …
2.
<달빛 수사>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큰 줄기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인 재은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심 변호사로 독립한 희우의 이야기고, 또 다른 축은 그들에게 의뢰를 맡긴 중학생 선아와 행방이 묘연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두 개의 축은 각자 미스터리를 품고 있습니다.
‘재은과 희우는 왜 멀어졌던 걸까?’
‘하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독자가 지루할 틈이 없게끔, <달빛 수사>는 두 개의 축을 효과적으로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전개 시켜 나갑니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았고, 전개 방식이나 구성도 안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는 데도 딱히 멀미를 느끼지 않았어요. 이렇게 깔끔하게 엮인 이야기를 만날 때면, 좋은 차 뒷좌석에 탄 것처럼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참 즐거운 일이죠.
3.
<달빛 수사>는 로맨스물과 추리물의 결합입니다.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재은과 희우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쪽에 쏠려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워…질 뻔했지만 멀어져 버리고, 이년 반 만에 사건을 이유로 재회한 두 사람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즉,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1
사랑하면 알고 싶어집니다. 함께 한 시간이 쌓이면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고 관계가 단단해져도,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연인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이, 잘못 알았던 점이, 기대와 달랐던 점이 뒤늦게 드러나 당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그럼 사이코메트리가 있다면 어떨까요. 단숨에 감정과 속내와 기억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만지지 마. 불쾌하니까. 떨어져.”
슬프게도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은 연인과 닮은 희우와, 무모하게 아버지와 결별한 자신을 돕는 재은.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역설적으로 상대를 너무 잘 알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멀어졌습니다. 희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재은이 두려웠고, 재은도 딱 한 번 들여다본 희우의 속내가 두려웠습니다.
너무 잘 안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추악하고 부끄러운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 부분은 들키는 것도, 알게 되는 것도 참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릅니다.
4.
그럼에도 <달빛 수사>는 참 사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소통 불가능성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관계를 추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단단한 그 껍질 안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희우가 있을까. 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네 안에 있는 게 무엇이든, 얼마나 어둡든, 깊든, 받아들이고 대면해도 두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틀렸었는지도 모르겠다. 받아들일 수만 있었다면, 여전히 희우 네 옆에 머물러 있었어야 맞는 거였다. 약한 건 희우 너만은 아니었어. 재은은 생각했다.
사랑은 곧 이해지만, 이해가 곧 사랑은 아닐 겁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걸 대면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관계를 망치는 건 모든 걸 이해해야만 한다는 강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시간은 약이죠. 이년 반의 시간 동안 곱씹을 것은 곱씹고, 덜어낼 것은 덜어낸 두 사람이 재회하여 ‘달빛 수사’를 벌이며 이른 결론. 중요한 것은 그 결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아무것도 읽지 않아도, 안다.
재은은 그의 손을 잡아당겨 도착한 전철에 사뿐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