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 듬뿍 반영된 리뷰입니다.
누구에게나 취향이란 것이 있으니까, 먼저 그것을 깔고 말하자면, 유머는 내 취향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크게 소리내어 웃는 일이 거의 없는 나는 유머에 좀 (어쩌면 많이?) 인색한 편이다. 한때 유행했던 ‘000을 웃겨라’ 같은 개그프로를 보면서도 과장된 분장과 의도된 오버 액션에 되려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두번째로, 내 취향은 치밀하고 쫀쫀한 것이다. 앨러리퀸의 [Y의 비극]에서 범죄자 키를 예상하는 대목처럼, 이렇게 재나 저렇게 재나 그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치밀한 수학적 증명같은 스토리. 추리소설 중에서도 사회파 보다는 본격 미스테리를 선호하는 류의 인간이다.
끝으로, 좀비물은 선호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좀비 소재의 국내 인기 드라마도 본 적 없고 같은 소재의 유명 영화도 본 적 없다. 따라서 좀비물 포함 신체강탈자라는 장르 자체를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오 사랑은 필자가 처음 접해보는 신체강탈자 장르였다. 그렇기에 장르명 만으로도 으스스하고 호러스러운 분위기가 연상되는데 저 아름다운 제목과 글이 어떻게 연결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런고로, 오 사랑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글 전체를 지배하는 무한한 유쾌 발랄 파워에 익숙치 못한 탓이었다. 밝고 명랑한 에너지는 등장인물부터 주요 소재인 병의 증세와 진행 방향, 작품 전체의 흐름에까지 곳곳에서 나타난다.
일단 누가봐도 MBTI 파워 E타입일 거 같은 엉뚱발랄한 주인공과, 이름마저 동화스런 조수 ‘장화신’씨. 파워P 타입으로 보이는 지유까지 (장화신씨는 분명 I타입 같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그들이 뿜어내는 긍정에너지는 쉼없이 넘쳐 흘러 독자인 나까지 물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폭력적으로 번져가는 병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낙관적 희망을 품게 한다.
병 자체는 또 어떠한가. 흔히 질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달리 이 병은 사람의 형태를 바꾸거나 변형시키지 않는다. 고통을 주거나 병에 걸린 그 자신 혹은 타인을 괴롭게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넘치는 사랑으로 사방에 배려와 이해, 친절을 뿌릴 뿐이다. 기껏 심해진 증상으로 한다는 것 역시 다분히 ‘우스꽝스러운’ 일들 뿐이다.
병의 발현- 병의 실체- 극복 방안-실천-후일담으로 이어지는 글의 전개 방식 또한 막힘없고 시원시원하며 크게 복잡한 트릭이나 암시 등이 없기에 유쾌하고 편안하게 술술 읽힌다.
헌데 ‘논리성’을 추구하는 나의 병적인 성향은 그 지점에서 조금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 어딘가에 반드시 ‘말이 되는’ 설명이 나올거란 (근거없는) 굳건한 믿음으로 병의 발생 원인, 옮는 이와 옮지 않는 이를 구분짓는 분명한 징후, 전염 방법, 퇴치 방법 등을 맹렬히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퇴치 법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딱히 이렇다 할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홀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논리성에 대한 갈구만큼 아쉬웠던 것은 ‘슬픔’의 부재였다. 글은 시종일관 가볍고 경쾌한 어조를 유지하는데, 글의 내용상 (정상적인 기준으로) 사랑했던 이를 잃고, 그들이 변해가는 것을 보고, 심한 경우 사망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예컨대 (회사의 꼬임에 넘어가) 부모의 발병을 밀고한 뒤 끔찍한 결말을 맞는 인물의 경우, 그가 슬픔과 통탄, 회한을 느끼는 부분은 시신 발견 직후의 딱 한 곳이다. 그 뒷부분의 그에 대한 묘사에서는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유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쓸데없이 진지하고 딱딱한 인간인 나에게는) 자신의 밀고로 인한 부모의 사망이 그 정도의 충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일지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제부터 쓸 내용은 앞 부분 내용을 생각하면 좀 부끄러움마저 들지만) 넘치는 에너지에 대한 부적응과 논리성에 대한 충격보다 더 스스로를 충격에 빠트린 건, 내가 이 글을 즐기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오 사랑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이건 말도 안돼!’ 를 속으로 외치면서도 눈은 빠르게 문장을 훑고 손은 자연스레 ‘다음화’를 터치했다. 다음, 또 다음, 또 다음, 그래서 어떻게 되는건데? 그리고 이 통통튀는 사무소의 엉뚱발랄한 요원들이 마침내 지구를 구하는 것은 물론 구하고도 응분의 댓가를 받기는 커녕 악플 세례만 받는 결말을 맞이했을 때, 몹시 ‘그들다운’ 결말이라 생각하며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띄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물은 좀 더 슬퍼해도 되잖아? 왜 누구는 옮고 누구는 옮지 않는지 끝끝내 설명이 없는거야? 머리 한켠은 그렇게 투덜투덜 하면서도 눈과 손은 멈추지 않고 그 유쾌발랄한 글을 훑어 내리고 있었다. 역시 재미있는 것에는 당할 재간이 없는 법이다!
신체강탈자라는 읽기에도 으스스한 소재를 밝고 명랑하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재주, ‘사랑’에 대한 재정의, ‘선함’과 ‘선하지 않음’의 모호함, 유명인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 혹은 반대되는 증오에 대한 묘사, 무정부 상태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 ‘소망’들이 모여내는 의외의 결과성 등등 ‘오, 사랑’은 재미있다는 말 외에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수많은 장점과 생각거리를 찾을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이 리뷰에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선 말을 아끼려 한다. 또 글의 세세한 내용 역시 스포방지 차원에서 쓰지 않고자 한다. 대신 이 말을 꼭 쓰고 싶었다.
오 사랑의 마지막 화를 만족스럽게 (그리고 좀은 탐욕스럽게) 읽어 치운 후에 문득 떠오른 생각 : 작가님은 사실은 ‘장광식’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는 실상 글을 통해 ‘오사랑’을 퍼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 경우를 생각하자면 이 병은 오사랑이 아니라 오, 만족 인지도 모르겠다)
이 병은 모든 독자의 취향을 본래 자기 것과 상관없이 유머+엉뚱발랄+유쾌로 바꾸어 버리는 병인거 같다! 그러므로 아직 오 사랑을 읽지 않은 분들께 경고한다. 조심하시라고, 이 재기넘치는 발랄한 글은 당신을 금방 ‘아무것도 못하고 글만 읽는 존재’로 바꾸어 버릴지 모른다고. 아, 그러나 염려마시길. 먼저 앓아본 결과, 기분 좋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후유증은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