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알 수 없는 문자를 받는다. 일면식도 없으면서 최대한도로 얼마든지 돈을 빌려주겠다거나 주식 정보를 공유한다는 단체 채팅방 링크를 보내 주겠다는 딱 봐도 수상쩍은 내용부터 특정 은행사의 새로운 상품을 안내하는 링크가 교묘한 안내 문구와 함께 하루에도 몇 개씩 도착한다. 물론 나는 그들에게 개인정보를 준 적이 없으니 이것들은 전부 피싱 문자다. 데이터는 지구를 오염시킨다는데. 대부분 경우에는 사는 데 하나 도움 주지 않으면서 사기성 범죄를 저지르고 데이터 쓰레기까지 발생시키는 사람들을 은은히 저주하며 메시지를 지우곤 하지만, 한두 개 혹하는 문자를 받을 때는 손가락이 먼저 나선다. 피싱의 진화는 어디까지 이루어지는가. 종종 이들의 수법이 뉴스에 보도될 때마다 소름이 돋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 귀여운 오탈자로 인해, 뜻하지 않은 재미를 주는 메시지도 있다. 얼마 전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 작가의 기대 신작 〈□□〉 2233년 △월 출간 예정!’. 보통이라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나갔을 이 오타가 얼마나 웃겼는지 몇 날 며칠의 이야깃거리였다. 마치 백 년도 훨씬 뒤의 미래에서 온 신간 소식 같았다. 이런 식의 문자는 기분을 나쁘게 하기는커녕 즐거운 상상의 기폭제가 되어준다. 그런데 만약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어떨까.
“10월 31일까지 마법사 등록 기간입니다. 기간 내에 지나마르나 1구청에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기분을 나쁘게 하는 문자도, 그렇다고 재미있게 볼 것도 아니다. 그저 뚱딴지같은 내용일 뿐이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이런 연락을 받는다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차단을 시도해도 먹히지 않는다면, 조금은 무서울 것이다. 정말 마법이라는 게 있지는 않겠지. 그때쯤 생각나는 한 영화. 그 이름도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다. 가만히 생각하자니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해리포터》 속 마법 학교에서 도착한 편지를 무시한 건 해리가 아니라 그를 방치하던 친척들이었지만, 해리가 호그와트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 그가 이미 독립해 있었고 나이도 이십 대 중반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더들리 삼촌의 반응과 비슷했을 것이다. 무슨 이런 장난이 다 있어, 라며 편지를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마법사들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해리의 마법 학교 입학이 늦어지자 그에게 뚜렷한 능력이 드러났던 것처럼,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읽고 싶은 책이 갑자기 날아와 얼굴을 들이받는다거나, 생각만으로 방 안의 불을 끄고 켤 수 있게 되는 식이다. 당신의 마음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두려움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나마르나가 어디인지 검색 정도는 해보라고 속삭인다. 그래, 더 버텼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지 모르니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손에 든다. 마침 지긋지긋한 문자 착신음이 울린다. 도착한 발신 불명의 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는 길을 모르시는 것 같아 지나마르나 행 지하철 이용 방법을 첨부합니다.
이요람 작가의 장편 연재 《마법 탐정-타니감각자》는 이렇듯 흥미로운 내용으로 시작된다. 영웅이 자기 길을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괴롭히던 과거의 수많은 작가처럼, 그 역시 소설 속 도진을 마법 세계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은 꽤 사실적이다. 장난 문자처럼 보이는 짧은 메시지. 그러나 반복적이고도 치밀하게 도착하는 그것은 도진을 혼란스럽게 하며, 결국 마법 세계로 인도한다.
마법 세계 지나마르나로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역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물품보관함에 소지품을 맡기듯 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단지 보관함의 일련번호인 세 자리가 아니라 네 자리 숫자를 입력할 것. 요상한 방법으로 표를 받아든 도진은 지하철노선도에서 “아무것도 없던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에” 갑자기 생긴 “은빛 글씨” 지나마르나역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열차가 남영역을 지난 이후에 사람들이 돌처럼 굳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마법처럼 지나마르나 역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도진이 지나마르나로 향하는 과정은 일반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 시작이 되는 역은 그 이름도 익숙한 영등포다. 그러나 이요람 작가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지하철 타는 방법을 미세하게 비틀어 마법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만든다. 너무 익숙해 신경도 쓰지 않았던 물품보관함에서 환상의 세계로 가는 티켓이 나오고, 스마트폰 노선도를 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벽면 노선도에 슬그머니 지나마르나역이 표시된다. 누군가에겐 출퇴근 시간 으레 스치는 특정 역들 사이에서 열차 칸에 탄 사람들이 돌로 변하고, 오직 지나마르나행 티켓을 소지한 이들만이 전철을 빠져나간다.
지극히 일상적인 영등포역과 전철이라는 공간을 약간 변형한 것만으로도 마법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마법탐정’ 시리즈의 출발에서 독자는 사소하지만 분명한 일상적 환상을 감지한다. ‘킹스크로스 역’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등장 이전에는 보통의 기차역이었을 테지만 이제 우리는 그곳의 이름을 들으면 9와 4분의 3 정거장을 떠올린다. 《마법탐정》 시리즈를 본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영등포역에서 물품보관함을 볼 때마다 1023번이 떠오르지 않을까. 가만히 서서 벽면 노선도의 남영역 부근을 뚫어져라 볼 수도 있고, 전철을 타고 가며 괜히 이 역과 저 역 사이에 마법의 역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다. 가장 환상적인 글의 도입부를 가장 일상적인 공간과 연결한 덕분에 독자들은 단순히 이 소설을 읽으며 텍스트로서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장소를 오갈 때마다 경험으로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익숙하게 살던 곳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도진을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건 ‘지하철’이다. 지하철역 또는 기차역은 먼 거리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는 중간 지대다. 하나의 열차는 출발지를 떠나 곳곳에 들르며 사람과 공간을 매개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역’ 또는 정류장은 여행을 시작하려는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들이 들르는 단골 장소이기도 하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 나타날 때 역은 훌륭하게 공간의 전환을 이루어준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지나마르나에 도착한 도진의 눈앞에는 평소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세계가 펼쳐진다. 《마법탐정-타니감각자》에는 환상적인 지나마르나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공간의 제한을 초월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두루주머니,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탈것인 거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차, 종이학을 이용한 통신. 전래동화에서나 보았던 도깨비감투와 마력을 의미하는 보석 ‘타니’까지. 만물상처럼 펼쳐지는 상상에 지루할 틈이 없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현실과 사뭇 다른 거리의 풍경, 여전히 번지수를 쓰는 예스러움까지 고루 갖췄다.
아직 도입부인 이 장편이 전체적인 세계관을 관통한다는 평가는 내리기 어렵다. 도진이 왜 타니감각자로 선택받았는지, 건우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등 주된 인물의 핵심적인 전사조차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독자들은 ‘지나마르나’라는 장소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곳은 마법의 도시지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있으며, 동시에 전통적이다. 그 안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도진과 건우가 살아온 인생의 많은 부분이 아직 숨겨져 있지만, 두 사람의 중요한 특징과 성격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드러난다. 건우는 제멋대로인 성정에 과격하기도 하지만,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밀고 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도진은 자신이 놓인 상황에 아직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매사에 신중한 모습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성격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조화를 이룬다. 건우는 지나마르나의 사정에 꽤 해박하지만, 도진은 그렇지 않다. 그는 지나마르나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뿐 아니라 ‘서덜’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서덜로서의 삶
도진은 ‘서덜’이다. 이 소설에서 서덜은 마법을 쓰지 못하다가 특정 시기가 지난 후 자신의 마력을 깨닫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도진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그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마법사의 세계로 진입한다.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도진은 꼬마 아이들이나 보는 9급 마법사 시험에 응시한다. 아이들의 비웃음을 들으며 도진은 처음으로 서덜로 사는 것의 창피함을 느낀다. 이후로 도진에게 ‘서덜’ 정체성을 일깨우는 순간이 여럿 발생한다. 도진이 마법사의 세계에 없던 서덜 출신 타니감각자가 된 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는 마법사였다면 굉장한 영광이었을 타니감각자가 된 것을 두려워하며 누군가 그것을 알게 될까 노심초사한다.
마법사와 서덜,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겉보기에는 마법을 쓰는 시기의 차이뿐이지만, 서덜은 필요 이상으로 차별받는다. 앞서 언급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도 서덜과 비슷한 개념의 ‘머글’이 나온다. 머글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 마법사와 전혀 다른 존재다. 일상적이고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마법도 머글은 사용할 수 없다. 머글은 단순히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이라는 의미를 넘어 멸칭으로 쓰인다. 그들끼리만 모여 있을 때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마법사들 사이에 끼는 순간, 보통 이하의 존재가 된다. 서덜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머글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강제로 마법사 등록을 해야 하고 지나마르나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머글보다 더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타니감각자 중에 서덜 출신은 없었어요. 모두 태어난 그 순간부터 굉장한 마법을 쓸 줄 알았던 마법사들이었죠. 그래서 몇몇 마법사들은 26년만에 자신이 마법사임을 알게 된 김도진 씨가 타니감각자인 걸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 그런 사람들은 같은 서덜 중에도 있을 거예요.”
건우는 계약 직전, 도진이 앞으로 어떤 운명 위에 놓일지를 미리 알려준다. 마법사와 인간 사이에 놓인 서덜. 어느 곳에서도 환영하지 않을 서덜. 마법사들은 도진이 마법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테고, 서덜들은 왜 하필이면 도진이 타니감각자에 임명되었는지 궁금해하며 배 아플 것이다. 도진은 서덜 중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고독하다. 타니를 감각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인간적으로 그를 반겨주는 집단은 없다.
마법사들 가운데 오직 한 명만 임명된다는 타니감각자가 9급 마법사 시험에 한 번에 붙지도 못한 서덜 출신이라니.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위치에 선 도진에게 은밀하게 다가와 계약서를 내민 건우는 그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실 도진의 재능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마법 탐정’ 시리즈의 1부인 ‘타니감각자’ 편에서는 건우가 미리 손을 쓴 덕에 도진이 타니감각자라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들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후 분명 한 번쯤 원치 않는 방식으로 그가 타니감각자임이 드러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 도진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법사와 서덜들은 각각 도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지나마르나에서 서덜로서 살아갈 도진의 여정, 그것을 따르고자 하는 호기심이 이 소설의 다음 편을 찾게 하는 힘이다.
한편 이 소설에는 서덜 출신이 한 명 더 나온다. 그건 바로 마법사의 타니를 빼앗고 죽인 연쇄살인마 박시헌이다. 그는 서덜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방법을 잘못 선택해 무고한 여러 마법사를 죽인다. 시헌이 마법사들을 죽이고 얻고자 한 건 그들의 마력이다. 그러나 도진과 건우의 합동 수사로 꼬리를 밟힌다. 시헌은 서덜로 사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외치며 절규한다. 그것 때문에 타니를 빼앗은 것이 나쁜 일이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그게 왜요? (마력을) 좀 나눠 갖자는데 (…) 그게 그렇게 불만스러워요? 마법사들은 다 가졌잖아요. 마법도, 부도, 명예도 (…) 우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데 (…) 우린 그냥 서덜일 뿐이라고”
독자들은 여기서 반문한다. 서덜 출신인 시헌이 마법사들을 죽여 타니와 마력을 손에 넣고자 함이 잘못인가. 강자의 힘을 얻기 위해 약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타당한가.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힘-마법’의 등가교환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마법사들이 서덜을 차별하는 것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서덜을 사회적으로 무시한다. 이것은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마르나에는 오랫동안 사회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이 소설에서 지나마르나 도시나 국가 차원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건 서덜인 도진이 타니감각자임을 이용할 때 가능하다. (건우의 친척 중 시장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만연한 범죄를 해결하며 서덜은 제한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헌은 자신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정체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살인이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분노를 분출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서덜은 능력과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것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건 잘못되었다. ‘서덜이 마법사를 죽였다’라는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이다. 시헌은 자신의 억울함으로 사회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변혁에 가장 적극적인 개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악당을 선택한다.
시헌은 도진과 건우의 합동 수사에서 잡힌 첫 범인이자 연쇄살인마다. 그는 범행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심문하는 두 사람에게 ‘산군’이라는 이름을 댄다. 이는 지나마르나에 커다란 악이 조직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개인 또는 단체를 통해 범행을 지시받는 사람들이 시헌 외에도 존재함을 뜻한다. 게다가 시헌은 소설의 말미에서 탈옥에 성공한다. 으스스하지만 낯익은, 불길하고도 잔인한 그림자가 도진과 건우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앞에는 또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마법과 탐정. 이 기묘한 조합은 이미 충분히 즐겁다. 환상도, 추리도 독자의 흥미를 고조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예측과 증거로 범인을 잡아야 하는 탐정에게 마법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지금은 9급 마법사 시험도 채 통과하지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살인자를 검거했고, 건우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며,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도진에게 잡지 못할 악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도진에게는 서덜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주는 제약이 있다. 시헌을 검거하며 그 한계를 분명히 보고 듣고 느낀 도진에게 앞으로의 수사가 평탄치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어찌되었던 지나마르나라는 커다란 집단에 속해 있는 도진에게 서덜이라는 패널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이요람 작가는 도진의 강점과 약점, 사회적 구조 문제와 묘한 계층 간의 긴장감이 흐르는 지나마르나의 모습을 짧은 장편 안에서 효과적으로 꿰어냈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오늘도 스치는 수많은 사람과 사건, 갈등과 어둠 가운데서 도진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지나마르나의 지도를 넓게 펼쳐두고 아직 미지의 영역인 곳을 상상해 본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와 사람들,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관계들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미 드러난 사건의 지표면을 매만져 본다. 지도의 마지막 조각이 맞아들어가는 날, 도진이 걷는 길의 끝에는 어떤 마법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법탐정-타니감각자》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의 환상적인 수사를 보기 위해 벌써 손이 바빠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마법이 그려지는 지도의 위를 걷는, 지나마르나 속 익명의 여행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