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향한 리뷰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호러나 스릴러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끔찍한 사건이나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장르의 쾌감을 전달하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예전에 읽었던 단편 Charlotte P. Gilman의 <누런 벽지>는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아도, 주인공의 시선으로 방안의 벽지를 따라가다 느껴졌던 오싹함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독자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고 상상 속으로 끌고 다니다, 어느 한 순간 예상못한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소설들은 (하위문화라 평가받는) 장르소설의 품위를 높이면서 독특한 쾌감을 선사하지요.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그런 종류의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불안한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그 불안이 주인공에게서 오는 것인지 외부 요인 때문인지 의심하게 되고, 나름의 원인을 추측하지만 예상 외의 결과에 기분 좋게 뒤통수를 얻어맞게 됩니다. 호러/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은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쾌감인지 아실 거예요.
(방향을 바꿔서) 우리 주변에는 선입견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 본질을 알지 못하고 겉핧기로만 보기 때문에 비롯되는 잘못된 인상들. 이를테면 아기 같은. 사람들은 아기들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기지만, 누군가에게(또는 어떤 때에는) 아기는 다른 종류의 공포가 되고는 합니다… 육아의 고단함, 산후후유증, 그런 단어들은 다른 리뷰들에서 많이 나왔기에 생략할게요. (제가 너무 늦게 도착한 걸까요^^!)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그런 선입견 뒤의 본질을 드러내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던 육아의 과정을 들여다보게 되고. 제3자는 알지 못했던 아기와 육아의 공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작가는 나름의 문체와 안정된 필력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후반부에 균형이 깨지면서 톤앤매너가 무너진 측면이 있지만, 호러/스릴러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충실히 따릅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님입니다.
해서,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장르의 순수한 재미를 즐기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2. (아래는 작가님을 향한 글입니다. 스포일러 다수. 패스를 권합니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순전히 개인적 사견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고, 리뷰의뢰를 받은 작품이기에 칭찬만 열거해선 도움되지 않을 것 같아 첨언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주관적 의견이므로) 다른 관점에서 한번 작품을 바라보는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숲을 이야기해 볼까요?
서스펜스를 풀어놓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면서 감정선을 쌓아가고 증폭시키는 방식이지요. 이런 류의 서스펜스는 애초 인물의 심리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대개 결말 역시 어떤 정서적 여운을 주면서 마무리 됩니다. 그 여운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독자의 정서를 건드리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좌우되지요.
다른 하나는, 커다란 사건(살인 같은)을 중심으로 단서와 복선들을 쌓아가는 방식입니다. 추리물에서 애용되는 이 방식은 결말에 반전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 단서와 복선의 촘촘함과 밀도에 따라 작품의 승패가 가려지지요.
그럼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어떤 방식을 취한 작품일까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 경과를 쌓아가는 전반부와 충격적인 반전으로 치닫는 후반부(동생이 찾아온 이후)로 나뉩니다. 복선들은 나름 배치되어 있고, 그것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서, 반전을 돋보이게 합니다. 플롯이 잘 짜여졌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분들 반응에서도 보이던데) 전후반부에서 어떤 이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심리와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풀어내다가 뒤에 가서는 작가가 의도한 결말을 (작가의 의도대로만!)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플롯과 복선, 신선한 결말(반전)이 잘 짜여지고 배치되어 있기에 나름 완성도를 담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구조적으로 어딘가 삐걱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응원글들에서 의문점들을 지적하는 부분들 말이지요… 그 이유가 뭘까요?
제 경험으로 봤을 때, 그러한 이질감과 삐걱거림은 톤앤매너(Tone&Manner. 시나리오작가들이 쓰는 용어라더군요)와 관계가 있습니다. 남편의 육아에 대한 두려움, 아기에 대한 애증의 심리를 따라가는 전반부와 반전의 근거들을 설명하는 후반부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서스펜스를 풀어놓는 두 가지 방식이 혼합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 혼합이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기에, 좋은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도 아쉬움을 남게 합니다… 절만의 성공이라고나 할까요?
톤앤매너는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필력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상 단계에서 결정됩니다.
작가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캐릭터와 플롯을 짜고, 트릿을 만들면서 전체 이야기를 그린 후에는… 그 짜여진 이야기를 어떤 분위기로 풀어내면서 독자들을 따라오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톤앤매너지요.
이 작품에는 그 과정이 간과되어 있어서 조금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응원댓글에서 작가가 밝히셨듯) “어떻게 하면 독자의 예상을 뒤집거나 놀래킬 수 있을까 고민한” 정도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러한 목표는 의미 있는 것이고, 목표를 성취한 작품이기에 마땅히 응원하면서도, 2% 부족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 2%가 작품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하니까요.
그것이, 작가가 고민하셔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모든 작품은 결국 작가의 선택이고.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 전체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분명 쉽지 않은 고민이 될 겁니다. 언제나처럼. 하지만 또한, 그 과정의 즐거움을 알기에 계속 쓰는 것이지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