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심금을 울리는 한겨울밤의 꿈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잠자는 도서관의 취준생 (작가: 김청귤,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2월, 조회 66

김청귤은 시대의 젊은 초상을 가장 유머 넘치지만 다정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그의 소설은 보통의 사람이 보통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에 아주 매력적이고도 신묘한 약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느낌을 준다. 평범한 주인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세계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분위기’는 환상 내지는 흥미로운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다. 청귤 작가는 가장 흔한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가장 비범한 매력을 만든다. 그러니 그가 대학원생이니 취준생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취준생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흔한 데다가 단 한 방울의 묘약이 필요한 존재이지 않은가.

「잠자는 도서관의 취준생」이라는 제목의 이 단편은 신기하게도 제목을 보았을 때 (분명 이 소설의 원작으로 삼았을)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숲’에서 ‘도서관’으로, 공주에서 취준생으로, 주인공과 그가 있는 장소만 바꾸었을 뿐인데 제목의 느낌은 근본부터 변화한다. 푸릇한 숲과 (적어도 취준생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도서관,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주와 늘 다크서클을 턱까지 내리고 사는 취준생. 독자들은 소설을 다 읽고서야, 또는 단편을 전부 읽고 제목을 다시 보아야만 이 글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원류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이미 완성된 하나의 소설을 차용한 창작에서 원작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것은 독자의 늦은 발견과 관련 있다. 이 소설에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늦게 발견되지만 분명 스토리에 온전히 녹아 있다. 그러므로 고전의 효과적인 현대식 차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귤 작가는 어떻게 숲 속의 공주를 취준생에 녹여 내었을까. 인물과 공간이 분리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잠자는 공주’와 ‘취준생’은 캐릭터상의 대척점에 있다. 공주는 아름다운 숲에서 자신을 깨워줄 인연을 기다리며 꿈꾸지만, 취준생은 날마다 동일하게 지나가는 하루를 뒤로 하고 피곤에 찌든 채 잠든다. 공주의 꿈은 여유롭고 낭만적인 데가 있지만, 취준생의 잠은 어딘지 안쓰럽고 삭막하다. 이러니 두 소설을 연관 짓기가 힘들 수밖에. 청귤 작가는 이토록 대척점에 있는 두 소재를 오히려 효과적으로 뒤섞는다. 공주와 취준생. 이 둘을 모두 한 이야기에서 살려내려는 것은 시도만으로도 독특하다. 그러나 그 둘의 대화에서 독자들은 청귤 작가 문체의 특징이기도 한 묘한 블랙코미디의 기운을 느낀다. ‘김청귤식’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농담들은 취준생과 공주가 소설 내부에서 발 딛는 위치를 명확한 극단으로 고정한 후에 그 둘의 대화가 전혀 가까워질 수 없는 속성의 인간들이 나누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여기서 나와 함께 있어요. 이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 어두운 밤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도, 타인의 가시도 없죠. 적당히 식은 장미차와 보드라운 흰 빵에 장미잼을 발라 먹어요. 욕조 한가득 장미 꽃잎을 뿌려도 좋지요. 우린 언제나 행복할 거예요.” (…)

“근데 난 아메리카노, 이거 좋아해요. 장미차나 장미잼은 좋아하지 않고요.”

 

공주는 은은향 향을 느끼며 장미로 만든 차와 잼을 먹지만, 취준생은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장미 차와 잼은 취준생이 아침 내내 먹고 생각한 진미채 무침, 컵라면, 소불고기처럼 짜거나 맵지 않다. 그저 달콤한 장미의 향을 상상하면 현실에서 잠시 멀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공주는 동화 속의 환상에서 오랜 시간 지내 바깥을 모른다. 그러나 취준생은 춥고 시린 겨울을 몸으로 통과하며 이제 막 따뜻한 도서관으로 들어온 참이다. 공주와 취준생만큼 다른 것은 둘이 놓인 공간이다.

취준생의 아침부터 묘사되는 이 소설은 그의 집에서 시작된다.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은 주방’, ‘추운 방안에서 먹는 컵라면’, ‘차가운 고깃조각’, ‘온 집안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라는 설명으로 보아 이 공간은 매우 춥고 어두우며 시리다. 그곳을 나온 취준생 ‘나’는 이른 아침의 도서관에 다다른다. “도서관은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의 향연이었다”. “새빨간 장미가 가득 피어 있는 도서관”은 푸르게만 묘사되던 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초여름에만 한철 피는 장미는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추위와 대조된다. 마치 환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도서관 속 공주처럼.

가장 현실적인 존재인 취준생과 가장 환상적인 공주를 이리저리 실험하며 하나의 이야기 안에 얽어 놓은 이 소설은 고전과 현대를 매끄럽게 경유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예상대로 분량을 늘렸을 때 이 스토리텔링은 더 큰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잠자는 도서관의 취준생」은 이미 취준생의 행보를 중심으로 도서관 내외의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각 세계의 현실성과 환상성을 대비하는 동시에 그 안에 개별의 메시지를 적당히 녹여냈다. 이 소설이 더 촘촘한 밀도와 개연성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보완되어야 할까. 누구도 하지 못한 상상을 교묘한 씨실과 날실로 이어내는 청귤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작가의 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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