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날 전부 먹어치워 버리기 전에 죽여버려야겠어 감상

대상작품: 검은 물고기의 집 (작가: 구미로, 작품정보)
리뷰어: 담장, 1월 24일, 조회 35

BGM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민을 먹어주는 물고기라는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고민을 먹어주는 물고기는 말 그대로 인간의 고민을 먹는다.

그것은 인간이 잠에 들 때마다 그들에게 잔존하는 저주 같은 고민들을 먹어치우는데 만일 먹이가 부족해진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물고기는 오래오래 고민을 먹고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은연 중에 구매자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면서도 동시에 공포에 못 이겨 자신을 가져다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한다.

숭배와 두려움 사이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자신을 구매한 사람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그 비좁은 어항 속에서 조금씩 몸을 부풀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저 사람만큼 몸이 커져 비로소 어항 밖으로 빠져나와 그의 삶을 빼앗고 빈 어항에는 자기 대신 자신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밀어넣어 버릴 순간이 오기만 고대하고 또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면 물고기가 된 사람은 다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싼 가격에 송장도 없이 배달될 것이고 누군가의 상념을 먹고 자랄 때까지 기회를 노릴 테다.

 

작중에서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문에선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아빠를 떠올린다. 눈을 감으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불안의 연속, 그는 벗어나기 위해 가장 어둡고 칙칙하고 외딴 곳으로 이사해 숨 죽이며 살고 싶어 했지만 온전한 회피와 낙원은 없었다. 시도때도 없이 불면이 찾아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어릴 적 겪었던 금붕어와 관련된 트라우마와 아직까지 끊어내지 못한 아빠와의 관계, 과거와 다르게 다정한 부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디선가 꺼림칙함과 괴리감을 느끼는 모든 순간들이 뭉치고 뭉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검은 물고기라는 사념체다.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모이고 모여 만든 하나의 덩어리, 그 음울한 사념체는 계속해서 증식했다. 분명 하나의 알갱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각의 사이클 속에서 무수히 많이 자라나고 커져있다. 어릴 적에 문방구에서 팔던 개구리알을 떠올리면 되겠다. 좁쌀보다도 작은 형형색색의 알갱이들을 물에 넣고 기다리면 하루 정도 지났을 때 몰라보게 흠뻑 커져 손바닥에 놓고 굴리면 축축하고 미끈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 물을 먹었을 때는 적당히 탱글해진 개구리알들이 더 많은 물을 더 오래도록 머금으면 어느새 흐물흐물 눅눅해져 펑하고 터져버리고 만다. 쌓이고 쌓이다가 감당하지 못할 순간이 오면 터져버리는 인간의 마음처럼 무언가에 의존하며 꾸역꾸역 눌러왔던 슬픔과 두려움이 비로소 밖으로 게워내지는 것이다.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 같은 상태였다. 키우던 금붕어를 변기에 내려버린 아빠를, 파란 변기물 속에서 헤엄치는 걸 물고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콰르르 물이 내려가는 소리를, 그 순간을 기억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그랬듯 으레 가해자인 아빠가 자신을 위해 그랬을 거라고, 자신이 오랫동안 어항을 봐서 시력이 떨어진 것을 염려하여 그랬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게 단순히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어린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설령 부모가 그러지 않더라도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당한 모든 일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의 잘못임을 머리로 알고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자신이 이 일을 입에 담을 때마다 부모를 악역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아빠와 다정하게 생일도 챙기고, 이제는 겉으론 원만하고 평범한 가정처럼 살아갈 때 괴리감이 들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가정 문제에 관해 싹 입을 닫고, 이제 와서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처럼 살고자 하면 좋겠다는 그들의 바람은 너무나 이기적인 게 아닌가. 비슷한 일을 겪은 대다수의 사람들도 바로 그곳에서부터 비롯한 괴리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괴리감이 결국에 그때의 부모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게 만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시발점이다. 어릴 적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이에게 학대를 저지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작중에서 잘 고증됐다고 생각한다. 그건 트라우마로서 ‘나’에게도 계속 따라 붙었고, 물고기라는 형체가 있는 존재를 통해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어느 순간 불면증 대신 하루종일 잠에 빠져들게 된 ‘나’는 이제는 잠에 드는 게 무섭다. 그토록 잠에 들고 싶어 했는데, 만약 자신이 까무룩 잠에 들게 되면 그 사이에 어항 속에서 불규칙적으로 첨벙대는 저 거대한 검은 물고기가 자신의 모든 두려움과 고민을 먹고 재생산하여 몸집을 더 부풀릴까 봐 그 사실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물고기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동안 먹힌 것은 ‘나’의 고민이 아니라 ‘나’ 자체였다.

 

물고기가 거실을 돌아다니고 침대에 눕고 주방에서 뭔가를 회 쳐 먹었다. 

물고기는 현실보다 더 자라 딱 나만큼 커져 있었다. 

뭘 먹고 자란 걸까. 딱 내 몸뚱이만큼 자랐다면? 쉬운 질문이었다. 나를 잡아먹었다.

 

죽여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잡아먹고 자란 저 물고기가 몸을 더 불리고 날 깔아뭉게 질식시키기 전에 서둘러 난도질해 죽여버려야 했다. 그래서 새벽에 칼부림을 하며 물고기를 죽였다. 어항이 깨져 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뜯어진 살덩어리를 찾으려 했지만 물고기의 살점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리고 소음에 찾아온 이웃에게 문을 열어주었을 때 ‘나’는 분명 깨져있었던 어항 속으로 다시 풍덩 빠져버린다. 사방이 거울이고, 몸이 편안했다. 양수에 있는 태아처럼 둥둥 떠다니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았고 검은 물고기만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물고기에게 몸을 빼앗기고 대신 물고기가 된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물고기 따위는 없는 어항에서 물고기의 환각을 봐왔던 걸까. 집에 찾아왔던 천사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이었을까? 물고기가 너무 커져서 반품해달라는 물음에 안 된다고 말하며 사이트를 폭파시켜버린 사람들은 실존했을까? 왜 택배가 송장도 없이 어항 하나만 덜렁 왔을까. 단순히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에서 그치기엔 너무나도 찝찝한 구석이 많다. 둥그렇고 빈 어항에서 문득 검은 물고기 하나가 비쳐보인다면 과연 그게 자신의 모습일지, 정말로 물고기일지는 손을 넣어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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