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갈등을 맞닥뜨렸을 때 보이는 대처 유형에는- 연구하는 학자마다 갈래가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5가지로 나누곤 한다. 호의형, 타협형, 경쟁형, 협력형, 회피형.
글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희원은 회피형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존 전사들마냥 희원의 가족은 여자들로만 구성된 3대다. 일찌감치 남편과 이혼하고 두 딸을 키운 엄마, 미혼인 희원,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모두 겪고 홀로 딸을 키우는 여동생 지원, 지원의 딸 서윤. 마흔이 코앞인 희원은 흔히 말하는 제대로 된 연애를 딱 한번 해봤고 결혼할 마음도 생각도 없는 대학 교수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고 대학시절 좋아했던 이의 접근에 흔들리다 마음을 접는다.
그런 희원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자꾸 도망치는 그림이 떠올랐다. 아빠를 닮았다는 엄마의 말로부터 도망치는, 그 남자에게로 향하는 자기 마음에서 도망치는. 어떤 아픔이 있을지 예상되기에 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은 수시로 메신저를 지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칼 같다, 손절의 대명사다, 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도, 실상은 더욱 마음 다치고 힘들어지기 전에, 감당할 수 없어지기 전에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그녀의 속은 실상은 가장 상처받기 쉽고 가장 연약한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때때로 눈물을 흘리는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화자의 성격만큼이나 담담하고 깔끔하다.
그녀의 엄마가 왜 이혼했는지, 지원이 왜 이혼했는지, 희원은 왜 남자친구와 헤어졌는지, 선우는 왜 이혼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찐따의 사랑은 뭐고, 제대로 된 사랑은 뭘까? 그녀는 상처받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그 엄마에게서 그녀와 동생을 따라 타고 내린 아픔은, 서윤이에게까지 닿지 않고 멈출 수 있을까? 그녀가 이전에 했던 사랑은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녀가 더이상 도망치지 않기를, 그럴 수 있도록 편안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