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을 자른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와 잘린 마리와 평온한 날들 (작가: 그린레보,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23년 1월, 조회 33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살인 충동을 느껴왔던 나는 가급적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짜 성격’을 알리지 않도록 조심해 왔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알려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살아있기 난처해지면 죽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목을 베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마트에서 널찍한 고깃칼을 사고, 참수 동영상을 참고해서 준비를 해두고는 클럽으로 향한다. 흰 피부에 검은 생머리의 고전적인 미인이라 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났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기절시킨 뒤, 화장실로 옮겨 준비해두었던 일을 실행해 옮긴다. 그런데, 핏물을 뒤집어쓴 여자의 머리가 그를 보고 싱긋 웃는다.

“수고했어요. 아직 거칠지만 소질이 보이는 솜씨인걸. 몇 번 더 연습하면 단번에 목을 칠 수도 있겠어.”

그렇게 나와 잘린 머리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은방울이 구르는 나른한 목소리로 그녀는 자신을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고, 나는 ‘머리’라 하는 건 아무래도 심한 것 같아서 약간 철자를 바꿔 ‘마리’라고 부르기로 한다. 마리는 자신이 목을 잘려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이끌리는 사람은 반드시 목을 치고 싶어하게 되니, 자신의 목을 자른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동안 꽤 여러 번 목을 잘렸었고, 자신의 목을 친 사람은 반드시 잘린 머리를 돌봐주었다고 말이다. 보통은 그러다 금방 미쳐서 죽어버리고 말아서, 살인자가 죽기 전에 새 몸체를 마련하느라 고생했다며 그러기 전에 자신의 새 몸체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한다. 쉽게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을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대화로 풀어가고 있는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끔찍하지 않다.

목이 잘려도 살아 있는 존재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기괴한 동거는 담담하고, 평온하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살아있는 머리는 자신이 수수께끼를 푸는 두뇌 작용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자가발전하기 때문에, 수수께끼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나는 수수께끼를 찾아 동네를 헤매 다닌다. 그러다 자신에게 관심이 많았던 옆집 아가씨를 통해 할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함께 해결하게 된다. 옆집 아가씨는 ‘보는 것만으로 사인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본격추리물의 면모를 펼쳐 보인다. 스토리의 대부분을 본격추리에 할애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잘린 머리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탐정이 되어 추리를 해 나간다는 설정 덕분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야기였다. 피가 난무하고,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등장하는 묘사를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추천해줄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충격적이고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해, 본격추리로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이런 작품은 어디서도 만난 적 없어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신선하고 색다른 미스터리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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