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한다. 나는 말랑말랑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 매일 기억을 잃는 소녀의 사랑과 같은 ‘시한부’가 들어가 있다면 더더욱 항마력이 떨어진다. 찌질한 연애담도 싫고, 너무나 환상 어린 시선이 가미된 로맨스 판타지류도 싫다. 영화 <중경삼림>이나 <오만과 편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처럼 담담한 가운데 말캉한 감정이 섞여 있는, 그럼에도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는 로맨스가 좋다.
그런데 이 소설 <내 애인은 DNA>, 오랜만에 주변에 추천해 줄 만한 로맨스였다. 담담한 서술, 그 안에 말캉하고도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독특했다. 인간이 아닌, 규소 기반으로 이뤄진 ‘외계생명체’였으니까. 이 소설은 외계인이 지구에 살던 당시에 사귀었던 연인을 회고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의 수명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수명이 긴 외계인, 주인공이 유희처럼 지구에 놀러갔다가 만난 여자는 ‘첫 순간’부터 남다르다.
“외계인이시라면 탄소 기반 생명체인지, 규소 기반인지 혹은 다른 건지 말해주세요.”
이 대사에서 이미 매력적이지 않은가.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라니! 그녀와의 첫 만남, 술과 서로에 빠진 밤을 보낸 그때를 추억하는 주인공의 평은 또한 이 한 줄이다.
‘그런 애인이었어요. 그런 애인이었죠.’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그러나 애정이 담뿍 깃든 어조로 이뤄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참 끈적하고 타오르는 열정이 있는 데도, 그 표현 방식이 참 ‘산뜻’하다 싶다. 바로 그렇기에 내가 이 소설을 단숨에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쓰게 되었겠지만 말이다.
지구에서 6년간 사귄 애인이 이별을 통보했을 때 주인공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하나 가져간다. 꾸준하고 언제나 연구실에서 고심하는, 잘 변하지 않는 애인의 모습이 DNA로 담긴 이 머리카락을 가져가서 주인공은 애인을 ‘그대로’ 복제한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횟수를 무수하게 거듭해 갈 수록 주인공이 확인한 것은 동일한 DNA인데도 저마다 다른 모습의 결말을 맞이하고, 비슷한 듯 다른 그녀가 만들어진다는 거였다. 심지어 복제된 애인 중에 한 개체는 외계와 주인공이 하는 복제 방식을 모조리 다 이해하고 스스로를 복제하기까지 한다.
최초의 애인은 떠나고, 홀로 남아 애인의 DNA로 무수히 많은 애인을 복제하고 무수하게 많은 사랑과 결별을 반복하는 외계인… 이 사랑의 끝은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내 애인은 DNA>를 읽어보도록! 스포는 나쁜 것이기에 이쯤 리뷰를 마무리한다.
하나 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온 우주를 다하여 널 사랑하려고 한다고.
온 우주를 다하여 사랑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어떠한 방식이라면 가능한 걸까. 외계인은 어째서 ‘온 우주’를 다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 뒷 이야기도, 감상도 이제는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