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지배당하고 꿈틀거렸던 두 인간의 이야기 <스페리아 이야기> 공모(감상)

대상작품: 스페리아 이야기 (작가: 이비스,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10시간 전,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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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봐. 네가 행성민들을 위해 뭔가 한다는 알량한 정의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너는 나와 다를 것이 없어.”

(본문.23-P120)

 

 

 

목차

1.판타지의 변주를 찾는 작가들

2.환경이 지배하는 욕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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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판타지의 변주를 찾는 작가들

 

칼과 마법이 어우러지는 이야기의 기분 좋은 환상을 가진 저로서는, 현시대에 그런 원시적인 세상에서 초월적인 힘을 구사하며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서글픔을 삼키곤 합니다.

 

물론 그런 평가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정통 판타지’라고 규정되는 요소들이 변주가 없이 차용되기를 반복했던 창작의 흐름에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곤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요소들을 사랑했기에 지금 우리가 만족하는 ‘판타지’라는 장르의 형태가 정의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식상하다고 평가받는 요소들을 아주 비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에 읽은 <스페리아 이야기>는 그런 우리가 사랑했던 ‘판타지’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함과 동시에, ‘판타지’로 규정되는 요소들에 변주를 시도한 것이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첫인상은 앞서 말했던 기술로 구축된 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모험을 떠나는 여주인공을 그리며 전형적인 ‘정통 판타지’의 색을 보여주나, 이 세상을 규정하는 힘의 원천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며 또 다른 색을 찾고 있습니다. 작가님 본인은 이것을 ‘장르의 확장’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해주셨으나, 그에 대해서는 작게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변주는 무척 의도적인 반전을 꾀하고 있었다는 점이죠.

 

이 글에서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변주’에 대한 해석을 중점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이것이 효과적인 확장이었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그것으로 보이는 지점에 충분한 고민거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2.환경이 지배하는 욕구에 대해.

 

관습적으로 쓰는 표현 중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권력을 쥐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 사람에게 주어진 조건을 바꾸는 것으로 본성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인데, 사실 저는 이 표현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분위기와 환경에 휘둘리는 생물이 아니던가요? 칼을 들면 한 번 휘둘러보고 싶고 총이 있으면 방아쇠라도 당겨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인데, 그런 식으로 유약하게 기울어지는 욕구들을 ‘본성’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이런 환경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이세계물’이라고 부르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범하다는 전제가 달린 소년소녀가 문명이 배제되고 칼과 마법이 난무하는 세상에 떨어져 명성을 얻는다는 설정은, ‘우리 같은 현대인의 환경과 지위를 바꾼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창작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환경과 지위에 대한 변화가 인간에 대한 변화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상당히 드문 편이라는 데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보통 제 성질을 작중 내내 유지하며, 오히려 그런 성질이 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더욱 초점을 두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 벽지만 바꿔도 적응기에 고생을 겪는 것을 떠올리면, 너무 평면적인 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리아 이야기>는 이런 환상적인 세상이 욕구를 가진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상당히 재밌는 지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중의 흑막으로 등장하는 ‘라이가’라는 인물로 살펴집니다.

 

‘라이가’는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낸 괴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스페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을 발견한 평범한 조사관이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날아다니며 나노머신이라는 절대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그들을 ‘평범하다’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기술들이라는 인식은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처럼 도착한 행성과 그 주민들을 관찰하며 불온한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19-P133) ‘이 행성에 사는 이들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초정밀 광학 센서로 이들의 일상의 삶을 살펴볼 때, 이들은 소박하고 원시적인 삶을 여우이하고 있다. 그 간극을 생각할 때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낀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검과 방패를 든 기사들의 손에,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농장일 하는 어머니의 손에 내가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쥐어준다면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한 문단은 사실상 그가 ‘스페리아’ 행성의 주민들을 바라보는 가장 명확한 시선이며, 그에 대한 제 자신의 욕구를 완벽하게 축약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에서 행성민들을, 말 그대로 원시인이나 다름없습니다. 문명생활에 무지하고, 칼을 휘두르는 야만성과 더불어, 신적인 존재를 믿고 숭배하는 순진함까지 갖추고 있죠. 그런 환경에 뛰어든 라이가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22-P72). 라이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육체가 변화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 이간 형태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해 있었다.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살덩어리가 그것을 끊임없이 없앴다가 재생시키는 클론 장치와 융합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기술에 의해 인간의 모습을 잃지만, 이 새로운 화경에서는 그 모습조차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습니다.

 

(22-P216). 라이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제 다른 왕국도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디어 자신이 이 행성의 신이 되었노라고 판단했다.

 

‘신’이라는 오만한 단어로 자신을 규정한 라이가는, 이 스페리아에서 ‘마물왕’이라는 칭호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손에 쥐고 있던 나노머신은 행성의 환경을 뒤바꿉니다. 나노머신이라는 기술은 곧 행성민들에게 초월적인 힘을 주고, 그것이 ‘마법’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집니다. 즉, 이 행성 주민들이 ‘마법’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라이가’라는 인물이 퍼뜨린 기술의 원천이었습니다.

 

(18-P72). “넌 이해할 거라 생각했어. 너도 경험해 봤잖아. 중앙왕국의 귀족들을. 그들은 신분으로 실력을 덮으려 하지. 그런 곳이 우리 왕국에게서 꼬박꼬박 세금을 걷어가 호의호식하는 꼴을 난 못 보겠어. 그러니 마물의 왕께 부탁하는 거야.”

 

‘마물왕’으로 행성에 ‘마법’이라는 기술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 라이가는, 행성민들에게 또 다른 환경으로 작용합니다. 행성 안에서만큼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는 자신의 위치를 한껏 끌어올리고, 그것은 또 다른 주민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행성의 원시적인 특징을 보고 자신의 지배욕을 풀었던 라이가가, 이제 또 다른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이 된 셈입니다.

 

(24-P28) “라이가는 항복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죠.”

 

‘신’이라는 존재가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라이가는 틀림없는 ‘신’의 위치에 있습니다. ‘스페리아’ 행성에 ‘마법’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마물’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이 행성의 환경을 바꾸고 창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에 선 이상, 자신을 ‘신’으로 인식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행성민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기에 이뤄낸 성과는 아닙니다. 만약 스페리아 행성민이 조금이라도 문명에 가까웠다면? 행성민이 조금이라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이성적인 해석이 가능했다면? 라이가라는 인물이 ‘신’으로 격상할 수 있는 토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이 행성이 (그들의 시선에서는) 원시적이라는 성질이 돋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라이가에게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라도 마련한 것은 이 행성의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24-P24). “수도에는 세상이 불타오를 때 십자성에서 온 구원자들이 올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주선을 노출시켜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24-P43). “오히려 행성민들은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겁니다.”

(24-P57). “우리 문명이 그 행성민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잖습니까. 비간섭 원칙을 어기자는 것이 아니라 간섭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얘기죠.”

 

사실 그런 시선은 라이가와 대척점에 있는 ‘카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또한 행성민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원시적인 신앙을 이용하여 계획을 꾸미는 등, 그 해석은 라이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보여준 선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영리함으로 포장될 수 있겠으나, 그 영리함 또한 이 행성의 환경보다 더 높을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이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행성민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들로 판단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도 함께 얼굴을 익힌 행성민조차 그를 ‘천사’로 의심하거나 기술을 ‘마법’이라고 쉽게 납득하는 등, 제3자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순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말은 곧 ‘카이’ 본인에게도 ‘라이가’와 동일한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위협에 대적하며 ‘스페리아’라는 행성을 지키는 것을 택합니다. 그것은 그가 훨씬 선하거나, 욕망과 대적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라이가가 ‘지배욕’이라는 욕구를 풀어낼 환경을 얻었듯이, 카이 또한 자신의 ‘사랑’이라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얻어낸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고 해석됩니다.

 

(29-P94). “저도 기억 소거를 해주세요.”

(29-P101). “아리엘라와 함께 있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 저도 같이 기억을 소거하는 거요.”

 

이처럼 ‘스페리아’는 기술적인 밀도가 낮지만,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작용됩니다. 나노머신이라는 기술이 ‘마법’이라는 초월적인 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죠. 이처럼 그곳에서 만난 가치로 인해 인간적인 욕구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보다 무지한 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배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애욕(愛慾)이.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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