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 작가님의 ‘아마존 몰리’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대학원..아..대학원..). 특히 자연스러운 장면전환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활약합니다. 매끄러우면서도 긴장감을 적당한 곳에서 끊고 또 유발시키는 능력이 굉장히 부럽네요. 공룡이 등장할 것 같다가 어째서인지 영국 고성의 결혼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작은 마을의 교회로 이어지고, 또 용과 소녀 그리고 용사가 등장하는 전설로 이어지더니, 화자의 과학적 해석과 재치있는 상상력이 얽힌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런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개인적으로는 ‘아마존 몰리’보다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공룡과 전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미가 섞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 속 화자는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친구 결혼식 때문에 얼떨결에 영국 시골의 고성을 방문했다가, 좀 떨어진 작은 마을의 교회 신부의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갑니다. 교회 신부가 고생물학자를 부르다니? 다행히 신부는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 따위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신부가 공룡 두개골을 본 딴 금속덩어리와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을 보여주며 마을의 전설을 알려줍니다. 신부는 전설의 일부가 사실이 아닐까 고민하면서 그리고 화자에게 의견을 물어요.
물론 화자는 과학자니까 현실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죠. 자연과학 박사학위는 과학적 사고를 한다는 신념의 표상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이야기는 재미가 없죠. 화자는 신부와 식사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과학자가 하는 이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과학자야말로 상상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상상력의 벡터가 향하는 방향은 달라요. 하지만 벡터의 길이는 결코 짧지 않고, 하나의 벡터만 있는 것도 아니죠. 수학과 논리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설을 만들어내고 또 검증하는게 과학자의 일이니까요.
그런 과학자의 상상이 학문이 아니라 이야기에 쓰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드SF가 나올 수도 있고 때로는 의외로 드라마가 나올 수도 있어요. ‘무서운 도마뱀’에서는 그 상상력이 용과 소녀가 등장하는 판타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스러운’ 이야기라는 게 아니에요. ‘색다른’ 이야기라는 거죠. 인간이 아닌 소녀와 얼떨결에 용에게서 마을과 소녀를 구한 소년, 그리고 성 게오르기우스의 이야기에 흡수되고, 과학자 동료들이 상상하는 후일담까지.
초반에 등장한 공룡 머리뼈와 스테인드글라스의 깃털공룡을 이야기의 첫 불씨로 삼고, 그 이상의 해석을 붙이지 않은 것도 좋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과학자의 상상은 사실일리가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공룡 머리뼈의 상처와 깃털공룡의 그림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죠.
그 마을에서 사실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