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인들과의 모임장소를 집으로 정한다. 원치 않은 약속을 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갑작스럽게 거인과 맞닥뜨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은 나를 쫓아오고 난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거인에게 도망친다.
정체불명의 거인을 집에서 마주친 ‘나’의 이야기는 매우 소박하고 간결하다. 집에서 마주친 거인을 피해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는 게 전부인 이 이야기는, 적은 등장인물(나, 거인)과 한정적인 장소(집)만을 가지고 매우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준다.
어떠한 사건의 기승전결을 따라가기 보단, 위협적인 상황과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만으로 꽉 채워진 이 작품이 끝까지 읽는 이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 탁월한 상황 묘사에 있다. 관객은 그리 넓지 않은 집 안을 이리저리 도망가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다니며, 같이 숨을 몰아쉬고, 같이 땀을 흘린다.
이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거인의 존재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공간인 집 안에서 갑자기 출현한 거인이라는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존재. 일상의 평안함과 당연함을 단번에 깨부수는 이 급진적인 설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거인의 존재 이유를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가 으레 기대하게 되는 인과관계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기괴한 상황에 내던져진 주인공, 그 상황을 타개해 나아가는 급박한 전개만 몰아친다.
혹자에겐 이러한 방식이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읽는 이의 적극적인 해석을 강요한다는 점에선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사유 님의 멋진 리뷰가 이미 있기에, 이 이상의 해석을 내놓을 자신이 없어, 단순한 감상만을 적게 된다).
거인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왜 ‘나’의 집에 갑자기 나타나 ‘나’를 공격하는 걸까. 서사는 없고 상황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멋질 수도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