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백마리 혹은 천마리를 접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별을 수백개 접어 항아리에 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은 들어봤고 행해봤을 이야기다. 나도 소원을 빌겠다고 열심히 종이학이며 별이며 꽃을 접어 유리병에 모았던 기억이 있다. 이사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이야기에서도 소원을 들어주는 방법이 등장한다. 하나는 창포꽃을 접는 방법이고, 또다른 하나는 ‘코코 포리고리’라는 방법이다. 매일 새 종이로 창포꽃을 세 송이씩 접어 꽃병에 넣고 창가에 두는 걸 백 일동안 반복하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귈 수 있다고 하는 방법과 타인 앞에서 손뼉을 치며 특정한 말을 하는 걸 반복하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귈 수 있다고 하는 방법. 창포꽃을 접는 방법은 종이학이나 별과 일맥상통하는 방법이라 피식 웃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코코 포리고리라고 하는 방법은 글쎄. 괜히 찝찝하다. 작중에서도 그랬듯이 서동요와 비슷한 방법이라 그런 걸까? 예전에야 서동요를 로맨스라고 봤을진 몰라도 지금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스토킹 등의 범죄로 보인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서 피곤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윤정은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술을 사자는 ‘나’의 내기를 받아들인다. ‘나’의 이야기는 평범한 괴담이다. 친구들 사이에 뭔지 모를 것이 섞여들어와 친구 행세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 흔한 괴담 플롯이라 무섭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윤정의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무서웠다. 처음에 ‘코코 포리고리’이야기를 들으면 이게 무슨 괴담이냐고 생각했었는데 곱씹을수록 무서웠다. 코코 포리고리가 성공한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사람과 커플이 되어 있을 것 아닌가? 모르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애정을 주고받고 내 생활의 내밀한 것까지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소름끼친다. 친밀감과 유대감, 애정을 기반으로 해야 할 관계를 타인에게 강요받으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 것 아냐. 내가 말하는 인형이 된 것과 뭐가 다르지? 상대와 차후에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할 수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코코 포리고리는 그렇지도 않다. 애초에 쌓아온 것들이 없으니 과거를 추억할 수도, 미래를 그릴 수도 없다. 단지 현재만 즐길 뿐. 그것도 나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로. 다른 생활은 멀쩡하게 하지만 연애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억도 못한 채로 하다니. 흡사 연애용 섹스돌로 전락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리고 내가 만나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주문 하나로 내 생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파괴되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진정한 괴담이 되었겠지만, 저런 괴리를 느끼고 윤정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원래대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나몰라라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수습하려한 윤정의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말의 반전을 보고 다시 읽으면 글이 색다르게 보인다. 윤정의 심정은 어땠을지,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윤정의 사랑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지 여러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최선은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겠지.
소원을 들어주는 방법은 다양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내 자유지만, 차후에 발생하는 일도 내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만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뒷감당은 확실하게.
해 볼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