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데이. 이상한 꿈을 꾼 양기백 경사는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신호등마다 걸려서 지각하고, 왠지 감기 기운도 올라온다. 온갖 종류의 주취자들이 활개 하는 핼러윈 데이답게 머리에 호박을 뒤집어쓴 민원인이 인계되고, 그는 불명확한 발음으로 자신을 배우주라 소개한다.
핼러윈데이의 기묘한 하루를 다룬 이 작품은 큰 소동이나 사건 없이 작은 에피소드만으로 상당한 흡입력을 갖추고 있다. 맛깔스러운 대사와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경찰서(혹은 파출소)의 풍경이 읽는 맛을 배가한다.
출입국관리소와 거기서 보낸 공문서, 그리고 핼러윈 데이의 불청객이라는 두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이 특유의 재미를 유발하는데, 그 이질적 결합의 세계관을 장황하게 설명하려 들지 않고 몇 가지의 설정들을 살짝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대체 민원인 배우주 씨의 정체는 무엇이며, 출입국관리소의 업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 무엇이 더 있는지, 그리고 양기백 경사의 불행한 하루의 연유는 무엇인지. 이 작품은 제가 가진 독특한 세계관의 단면만을 설핏 보여주곤 시치미 뚝 떼고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 다소 황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쿨한 끝맺음이지만 그 점이 이 작품의 더없는 매력이다.
짧은 이 단편을 읽으면서 로저 젤라즈니의 경장편 <고독한 시월의 밤>이 떠올랐다. 두 작품은 개성적인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한 번에 다 보여주려 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고, 커튼을 조금씩만 들추며 그 안의 세계를 슬쩍 비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의식에 빠지지 않고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작품의 태도도 비슷하다.
이 작품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짧지만, 짧은 엽편소설의 분량 안에서 충분한 재미를 뽑아낸다. 담백하고 깔끔한, 소담한 작품이다.